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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으로 망명한 영국 수도자들이 독일에 일군 신앙의 터전 | 2026-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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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있던 겸재 정선의 화첩이 8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만 봐도 문화유산이 다시 원래 만들어진 나라로 돌아가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첩은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1925년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수집해 갔다가, 한독 베네딕도회 수도자 간의 오랜 신뢰 관계에 힘입어 2005년 왜관 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된 것이죠. 그와 반대로 전쟁이나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난 이들처럼 국경을 넘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유산도 있습니다. 12세기 영국 채색 필사본의 걸작인 「성 알반 시편집」이 대표적입니다. 시편집은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국을 떠난 영국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을 따라 독일로 건너왔습니다. 현재 원본은 힐데스하임 대성당 도서관에 있지만, 망명 수도자들이 다시 일으킨 람슈프링에 수도원 성당은 그대로 남아 오늘날 독일뿐 아니라 영국과 아일랜드의 순례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수녀원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람슈프링에는 니더작센주의 주도 하노버에서 남쪽으로 약 70㎞ 떨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프랑크푸르트와 하노버, 함부르크 사이 7번 아우토반을 따라 오갈 때 잠시 우회하길 권합니다. 뚜벅이는 근처 역까지 이동해 지역 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옛 군사·교역로였던 하우프트슈트라세에서 내려 목조 가옥을 따라 걸으면, 공원 너머로 거대한 회색 지붕이 보입니다. 장식이 거의 없는 석벽과 가파른 지붕 때문에 거대한 창고나 요새처럼 보이지만, 한때 니더작센의 신앙 중심지였던 수도원 성당입니다. 이곳의 역사는 9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힐데스하임의 알트프리트 주교의 지원을 받아 리크다크 백작과 그의 아내 임힐트가 설립한 여성 규율수녀원이 시작이었습니다. 규율수녀원은 12세기 전반 베네딕도회 수녀원으로 바뀌었고, 수녀원의 보호와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은 점차 장이 들어서는 도시로 발전합니다.
고국 떠난 수도자들이 다시 일으킨 공동체 하지만 이곳도 종교개혁의 파고를 넘지 못했습니다. 지역 영주가 신교로 개종한 후 1568년에 개신교 수녀원으로 바뀌었다가 30년 전쟁이 끝날 무렵인 1643년에서야 비로소 다시 힐데스하임 교구로 반환되었습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수도원을 넘겨받은 이들은 여덟 명의 영국 베네딕도회 수도자였습니다. 그들은 영국 종교개혁 이후 수도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서 고국을 떠났던 망명 수도자였는데, 당시 힐데스하임을 비롯해 여러 교구를 맡았던 페르디난트 폰 바이에른 제후주교가 이들을 받아들인 것이었죠. 영국에서의 경험으로 오랫동안 신교 지역이었던 니더작센에서 가톨릭 신앙을 되살릴 최적의 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국 수도자들은 1644년 가톨릭 신자가 겨우 두 명이었던 곳에서 수도원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수도자들은 농지와 수도원 경제를 되살리는 한편, 붕괴 직전이던 중세 성당을 대신해 1670년 지금의 새 성당을 짓기 시작해 지역의 신앙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1671년부터는 영국 소년 학교를 열어 모국 선교에 다시 나설 인재를 길렀습니다. 「성 알반 시편집」도 이 과정에서 들어왔습니다. 수도원은 종교개혁 이후 유럽 대륙에 세워진 영국 베네딕도회 공동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곳으로 발전합니다.
영국 수도자 피난처에 잠든 아일랜드 성인 수도원 성당은 중세 고딕 양식을 재해석한 홀 성당 구조입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밝고 넓은 공간에 놀랍니다. 계단 위 주 제대를 중심으로 일곱 개의 바로크 제대가 화려하게 공간을 채우고, 벽과 석주, 늑골 궁륭은 중세 고딕의 절제된 질서를 보여줍니다. 왼쪽으로 묵주 기도 제대가 있고, 오른쪽으로 성 베네딕도 제대가 보입니다. 두 제대 사이에 서면 영국 수도자들이 이 성당을 단순한 마을 본당이 아니라 수도자의 기도 공간이자 신자들의 신앙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높이 솟은 주 제대는 중세 고딕의 수직성을 바로크 조각으로 다시 표현한 듯합니다. 주 제대 앞에 성 올리버 플렁킷의 성해함이 모셔져 있습니다. 플렁킷은 1681년 영국의 가톨릭 박해 속에서 순교한 아일랜드 아마대교구장으로, 1975년에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750여 년 만에 다시 탄생한 새로운 아일랜드 성인이었지요. 감옥에서 그를 돌보던 친구였던 베네딕도회 수도자가 1683년 유해를 이곳으로 옮겨왔으니, 고국에서 쫓겨난 수도자들의 피난처가 또 다른 나라의 순교자를 품은 성지가 된 셈입니다. 플렁킷 순례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매년 8월 마지막 토요일에 현양 축제가 열립니다. 이곳을 신앙의 중심지, 순례지로 가꾼 이들은 고향을 잃고 찾아온 이들이었습니다. 시편집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귀중한 필사본이어서 살아남은 것은 아닙니다. 책을 품고 국경을 넘은 수도자들과 그것을 보존한 공동체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보편 교회의 신앙 역사는 하나의 갈래로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사람들도 교회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라틴어 시편을 노래하던 영국 수도자들과 독일 신자들을 떠올리며, 전쟁·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는 이들과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환대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 <순례 팁> ※ 대도시에서 보덴부르크역으로 이동 후 람슈프링에까지 41번 버스(약 25분)나 택시 이용. 자동차로 A7에서 66번 출구(Rhüden/Harz)로 나와 12㎞. ※ 수도원 성당 미사: 주일 11:00(격주). 성당 개방: 하절기(5~10월) 화-금(11:00~12:00), 목 (14:30~15:30). 주일(15:00~17:00) 소규모라도 예약하면 수도원 투어·순례 가능.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7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차윤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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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평화신문 2026-08-12 오전 9:32:14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