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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 2026-06-26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이 공동 개최하고 참가국도 48개국으로 확대됐다. 경기 수와 기간은 늘고 각종 공정한 규칙들도 새로 도입됐다. 1930년 제1회 대회 이후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혁신적인 대회로 진행되고 있다.

참가 국가를 확대하자 그동안 세계 무대에서 소외됐던 변방의 국가들과 가난한 나라의 청년들에겐 꿈을 펼칠 기회가 주어졌다. 사상 첫 3개국 공동 개최에는 북중미 대륙의 협력과 결속, 그리고 축구의 세계화를 담았다.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과 이민 갈등, 마약 카르텔 문제, 미국과 캐나다 간 무역 분쟁 해결의 실마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지구촌이 불의한 전쟁과 갈등으로 서로 반목하는 가운데 열렸다. 레오 14세 교황은 최근 스페인 방문 중 한 어린이로부터 축구에 대해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함께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스타 선수라도 공을 패스하지 않고 혼자 플레이하면 그 경기는 지고 말 것이다.” 혼자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말처럼 인류 공존과 평화를 위해서는 연대와 나눔의 패스가 필요하다는 당부였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이번 월드컵은 조별 예선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국제 정치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첨예한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강경한 이민 정책과 입국 규제가 스포츠의 보편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이란 대표팀은 경기가 열리는 미국에서 멕시코로 베이스캠프를 옮겨야 했고 국경을 넘나드는 출퇴근 원정 경기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미국의 자의적인 비자 제한은 비단 이란뿐만이 아니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은 미국의 이민 비자 발급 제한 국가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받아 첫 경기 시작 24시간 전에 겨우 미국 땅을 밟았다. 소말리아 1호 월드컵 심판과 팔레스타인 축구협회장은 입국이 거부됐다. 이라크 선수는 테러리스트 의심 인물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장시간 구금 조사를 받아야 했다. FIFA가 내건 ‘모두를 위한 월드컵’은 무색해졌다.

개막 직후부터 다양한 형태의 인종 차별 사건이 발생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대표팀의 조별리그 1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 한 멕시코 남성이 셀카를 촬영 중인 한국인을 향해 대표적 동양인 비하 행위인 ‘눈 찢기’를 해 충격을 줬다. 경기 도중 한 심판은 백인 우월주의를 뜻하는 은어로 오용되는 ‘OK 손짓’을 보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FIFA는 인종 차별 행위에 대해 경기 몰수패와 경기장 영구 출입금지, 형사 고발과 사법 공조 등 강력한 지침을 제시하며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SNS를 통한 악성 댓글과 경기장 내 돌발적 차별 행위를 완벽히 통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모든 스포츠는 승패를 겨룬다. 그러나 궁극적인 지향점은 상대방을 짓밟는 승리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형제애다. 경기 결과에 승복하고 넘어진 상대 선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나눔과 배려의 행동 속에서 인류는 공동선을 배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월드컵을 창시한 줄 리메는 “축구는 국경을 허물고 계급을 초월하며,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묶어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라고 말했다.

자국 우선주의와 인종 차별, 상업주의의 오명을 안고 출발한 북중미 월드컵에 남겨진 소명은 무엇일까? 정치가 갈라놓은 세상을 월드컵이 이어붙이는 것이다. 차별하는 제도의 칼날을 거두고 모든 참가자를 편견 없이 포용하고 배려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이 불의한 장벽들을 모두 허물고 반목의 총성을 잠재우며 축구라는 공통의 언어로 연대를 증명하는 참된 평화의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서종빈
[가톨릭평화신문 2026-06-26 오전 10:19:55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