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

  • 전례성사
  • 가톨릭성미술
  • 가톨릭성인
  • 성당/성지
  • 일반갤러리
  • gallery1898

알림

0

  •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에파타!” 2026-05-04

“꼭 무엇을 해주려고 하는 것만이 환대가 아닙니다. 저희가 가는 길을 막지 않고 자유롭게 열어주는 것도 환대입니다.”


이주민들에 대한 도움과 지원 방안을 토의하던 자리에 참석한 어떤 이주민 신자가 한 발언이 기억납니다. 저에게 그 발언은 꽤 인상 깊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환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늘 ‘무엇을 해 주어야 하나?’ 고민한 적은 많았지만, ‘그들이 스스로 가는 길을 막지 않는 것만으로도 환대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대로, 때로는 지나친 호의와 관심이 이주민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움 안에서 일상적인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봐주기를 더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적당한 무심함이 오히려 관계를 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렇게 행동하고자 마음먹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가벼운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가도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대화 안에서 듣게 될 때면, 속으로 ‘지금 나에게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아니야, 내가 그저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일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과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이주민들을 대면하면 종종 침묵 중의 어색함을 경험하곤 합니다. 의도된 침묵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고민하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쳐 생긴 침묵입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그 어색함 안에서 늘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곤 합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같은 식탁에 마주 앉은 이주노동자의 오른쪽 손이 뭉툭하게 붕대로 감겨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장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나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는 다친 손을 식탁 밑으로 감추고 태연한 척 행동했지만, 그것을 눈치챈 후 저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다쳤는지 물어볼까?’, ‘괜찮냐고 물어볼까?’, ‘아니야, 일하다가 손가락 절단된 것도, 다치고 상심해 있을 것도 뻔한데 뻔한 질문을 뭐 하러 물어봐…. 그냥 못 본 척 가벼운 대화를 하자. 그런데 이 상황에서 무슨 대화를 해야 하지?’ 


그렇게 머릿속에서는 많은 말이 떠오르다가 다시 고민하고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둘이 마주 앉아 묵묵히 밥을 먹은 20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다친 손에서 시선을 멀리 두려고 노력하는 저를 두고 갑자기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밥 먹는 내내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도 안 한 나의 태도가 그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나 후회스러운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콜라 한 캔을 가지고 돌아오더니, 테이블 위에서 한 손으로 캔 뚜껑을 조심스레 열고 저에게 그 콜라를 나누어 따라 주었습니다. “신부님, 콜라 드세요.” 그리고 살짝 웃었습니다. 그제야 저도 혀가 풀리고 말이 비로소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너무 상심하지 말고 힘내요.”



글 _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가톨릭신문 2026-05-04 오후 4:32: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