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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브렌다노의 항해〉와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2026-05-04

5월 16일은 아일랜드의 성인, 항해자 브렌다노 축일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배를 타고 형제들과 함께 ‘약속된 땅’을 찾아 서쪽 바다로 떠났다. 항해가 역사적으로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리스도교 세계를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브렌다노가 향한 곳은 지리의 바다이기 이전에, 신앙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중세 라틴어 문헌 「성 브렌다노 수도원장의 항해(Navigatio Sancti Brendani Abbatis)」, 「브렌다노의 삶(Vita Brendani)」 등으로 전해진다. 항해담 속 바다는 평온하지 않다. 브렌다노 일행은 섬이라고 믿고 내린 곳에서 불을 피우지만, 그곳은 섬이 아니라 거대한 해양 생물 야스코니우스(Jasconius)의 등이다. 그들은 떠돌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새들의 섬, 유다 이스카리옷이 절망 속에서 잠시 쉬는 바위를 본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기이한 전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바다는 인간이 자신을 내어 맡기고 하느님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의 장소다.


이런 성 브렌다노를 20세기 음악으로 듣는 경험은 각별하다. 아일랜드 작곡가 숀 데이비(Shaun Davey)가 1980년 선보인 〈브렌다노의 항해(The Brendan Voyage)〉는 탐험가 팀 세버린이 아일랜드에서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까지 배를 타고 나아간 과정을 묘사한 곡이다. 여기서 세버린의 모험은 성 브렌다노의 뱃길을 재현한 것이다. 아일랜드 전통 악기 일리언 파이프의 음색은 성인의 배를 표현하고, 오케스트라는 그들이 마주하는 바다, 기상 조건, 섬, 생물들을 형상화한다.



10개 악장의 구조는 실제 항로를 그대로 따른다. ‘서곡’과 ‘브렌다노의 테마’로 시작된 도정은, ‘미키네스의 절벽’ 같은 구체적인 풍경 속으로 청자를 인도한다.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행로’와 집어삼킬 듯한 ‘강풍’의 위기는 신앙의 시련처럼 그려지지만, 배는 끝내 ‘뉴펀들랜드’라는 평화로운 항구에 도착한다.


이 서사는 9세기 철학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의 ‘지성적 항해’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의 이름 ‘스코투스’는 당시 맥락에서 아일랜드인을, ‘에리우게나’ 역시 에리우(?riu, 아일랜드) 태생임을 의미한다.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 활동한 그는 주저 「자연구분론(Periphyseon)」 4권에서 신학·철학적 탐구를 위태로운 바닷길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독자를 초대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전혀 다른 항해에 들어선다. 여기서는 수많은 굽이치고 얽힌 논의들 사이에서 항로를 가려내야 하고, 난해한 교리들의 가파른 비탈을 올라야 하며, 시르테스의 해역, 곧 낯선 가르침들의 급류가 만들어내는 위험한 지역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곳에서는 가장 미묘한 지성들의 어스름 속에서 언제나 즉각적인 난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들은 마치 숨겨진 암초처럼 갑작스레 우리의 배를 산산이 부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선장이자 조타수가 되고, 성령의 은혜로운 바람이 우리 돛을 가득 채운다면, 우리는 이 모든 위험 속에서도 참되고 안전한 항로를 가려낼 것이며, 마침내 우리가 찾는 항구에, 상처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평온한 여로 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돛을 펼치고 바다로 나아가자.”(「Periphyseon」, Ⅳ. 744a-b)


이 점에서 브렌다노, 작곡가 데이비, 에리우게나는 아일랜드 수도승 전통인 ‘그리스도를 위한 순례(Peregrinatio pro Christo)’와 겹친다. 이는 고향과 안온한 삶을 떠나 오직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거룩한 유랑의 정서다. 그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장소인 동시에, 나를 비우고 하느님 현존과 이끄심을 느끼는 은총의 공간이었다.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넘었던 수도자들, 지성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했던 철학자, 〈브렌다노의 항해〉 선율은 오늘날 여전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하느님 자비를 조타수 삼아, 각자의 대해로 기꺼이 향하고 있는가. 그러니 이제 돛을 펼치고 바다로 나아가자.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가톨릭신문 2026-05-04 오후 4:32: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