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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도 행복해질 수 있는가? | 2026-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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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원죄(原罪, peccatum originale) 교리는 현대 지성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과 오해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과거의 비합리적 관행이었던 ‘연좌제(連坐制)’가 폐지된 현대적 법 감정에서, 원조의 죄가 후손에게 전가된다는 논리는 시대착오적인 신화로 치부되기 쉽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이를 ‘인간을 교회의 권력 아래 종속시키기 위한 불순한 통제 도구’라고 비판하며 인간의 자율성과 이성적 낙관론을 앞세웠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목도하고 있는 보편적 악, 즉 구조적 불평등과 환경 파괴, 그리고 집단적 광기는 인간 이성에 대한 낙관론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반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재구성한 원죄론 원죄론이 가톨릭의 정통 교리로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의 죄를 통해서 죽음이 들어왔고”(로마 5,12 참조)라는 말씀을 근거로 ‘유아 세례’라는 초대교회의 관습을 원죄의 실재를 증명하는 신학적 토대로 삼았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않은 영아가 세례를 받는 이유는 그들이 인격적 죄는 없을지라도 원초적 죄성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논증하며 당시 유행하던 펠라지우스의 낙관론에 맞섰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에는 육체적 욕망과의 투쟁에서 좌절했던 그의 개인적 체험이 투영되어 있다. 그에게 원죄란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려는’ 헛된 의지로 창조주께 반항한 결과 발생한 무질서한 상태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의 실재를 선언했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더욱 정교한 형이상학적 틀 안에서 재구성한다. 토마스는 원죄를 단순한 행위가 아닌 ‘본성적 습성(habitus naturalis)’으로 규정한다. 그는 이를 ‘본성의 질병’에 비유하여 설명하며, 원죄를 분석하기 위해 아담과 하와가 누리고 있던 ‘본래의 의로움(iustitia originalis)’이라는 조화 구조를 상정한다.(I-II,82,1) 본래의 의로움은 세 단계의 위계적 질서를 갖는다. 첫째, 이성이 하느님께 복종하고, 둘째, 하위 능력인 욕구가 이성에 복종하며, 셋째, 육체가 영혼에 복종하는 상태이다. 원죄는 이 질서의 정점인 이성이 하느님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전체 조화가 붕괴된 상태이다. 즉, 하느님을 향한 질서가 사라짐으로써 내면의 욕망이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 것이 원죄의 본질이다. 원죄의 구조적 분석에 이어, 이 부패가 어떻게 인류 전체에 전수되는지에 대한 전이 메커니즘을 고찰한다. 토마스는 인류 전체를, 아담을 머리로 하는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 파악한다. 그는 “인류는 한 몸의 많은 지체들”과 같다고 비유한다.(I-II,81,1) 그에 따르면, 원죄는 개별 인격의 죄가 아니라 ‘본성의 죄(peccatum naturae)’이기에, 자연적 출산이라는 통로를 통해 전이된다. 그는 원죄가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된 것이 아니라 ‘원초적 타락’임을 강조한다.(I-II,82,4) 아담이 인류 본성의 첫 기원이기에, 그가 훼손한 본성은 그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후손에게 결핍된 채로 전달된다. “우리 모두가 곧 아담이다”라는 명제는 인류가 맺고 있는 존재론적 유대를 의미하며, 각 개인이 자신의 근원적 죄성에 대해 책임을 공유함을 뜻한다. 원죄는 인류의 원초적 타락…비록 본성이 훼손됐다 해도 완전하게 소멸된 것은 아냐 ‘선’을 인식하고 실천한다면…하느님과의 관계 회복하고 참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어 타락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인간 행복의 가능성 토마스는 인간 본성이 원죄로 인해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위축된 것이라는 중도적 입장을 견지한다.(I-II,85,2)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보는 개신교적 ‘전적 타락론’에 대한 반론이 된다. 토마스에 따르면, 원죄로 인해 인간 본성에는 악의, 무지, 나약함, 탐욕이라는 ‘네 가지 상처’가 남았다. 이 상처들은 인간이 선을 행하려 할 때마다 겪는 내적 마찰과 저항의 근원이 된다. 이렇게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는 자연적으로 덕에 끌리는 힘이 감소하였고, 그 힘은 “죄 때문에 지속해서 감소한다.”(I-II,85,3)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덕으로 향하는 본성적 이끌림’과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지위가 남아 있다. 토마스는 인간이 특별한 은총 없이도 ‘집을 짓거나 포도나무를 심는’ 등의 자연적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본다.(I-II,109,2) 원죄로 인해 본성은 상처 입었으나 완전히 타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선을 인식하고 부분적 선을 행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 본성의 회복 가능성을 열어둔 토마스의 견해는 현대의 사회 구조적 악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된다. 사회적 조건으로서의 원죄와 구조적 악 현대 신학은 원죄를 개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회적 조건’으로 재해석한다. 칸트의 ‘근본악’ 개념과 현대 신학자들의 관점은 원죄를 ‘사회악이 널리 퍼진 조건’ 속에서의 실존적 상황으로 설명한다. 아기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뒤틀린 세계의 선택들에 의해 방향 지어져 있다는 ‘인생 출발의 훼손’은 원죄의 현대적 형태이다. 이러한 “세상의 죄”(요한 1,29)의 관점은 구조적 악이 개인의 무지와 탐욕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를 분석한다. 원죄 교리는 인간의 ‘자력 구원’이라는 오만을 경계하고, 개인이 구조 내부에서 발현하는 악의 보편성을 인정하게 한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결국 인간의 힘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며, 초자연적인 회복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원죄 교리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 본성에 대한 폄하와 혐오가 아니라, 원초적 죄성과 상처의 정체를 직시함으로써 시작되는 ‘치유의 여정’을 제시하는 데 있다. 토마스가 논증하듯 인간 본성에는 여전히 선함이 존재하지만, ‘병자’와 같은 상태에 처한 인간은 치유하는 은총 없이는 초자연적 선은 물론 자연적 선조차 완벽히 수행할 수 없다. 결국 원죄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은총의 필연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한다. 인간은 원죄로 인해 사멸의 길에 놓였으나, 부활찬송에 나오는 “오, 복된 탓이여(O felix culpa)”라는 역설처럼 이 결핍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향한 첫걸음이다. 원죄 교리는 인간 실존의 어둠을 밝힘으로써, 그 너머에 있는 빛과 은총의 신비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참행복에 도달하게 하는 이정표이다. 글 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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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신문 2026-05-04 오후 4:32:11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