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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부활 제6주일 2026-05-04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 문득 혼자가 된 듯한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부모를 잃을 때만이 아니라, 믿고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때, 기댈 곳이 사라진 듯 느껴질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깊은 상실감과 공허를 경험합니다. 그때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지금 나를 붙들어 주시는 분은 누구인가?”


수녀원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수도자들 역시 이러한 인간적인 경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떤 수도자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모두 선종하셨을 때, 주변에서는 슬픔을 나누며 더 이상 의지할 혈육이 없다는 현실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하느님께 봉헌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깊은 상실감과 고독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부터 21절에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이러한 두려움과 상실감의 한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이 말씀에는 예수님이 떠나신 뒤 제자들이 겪게 될 불안과 공허 그리고 제자 공동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깊은 염려를 품으신 스승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방황하게 될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을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경에서 ‘고아’는 단순히 부모 없는 아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고아는 사회적 약자이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고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의 대상입니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은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탈출 22,21)라고 명령하십니다. 시편은 하느님을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시편 68,6)라 부르며, “주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시편 146,9)고 노래합니다.


고아는 흔히 결핍 속에 살아가며, 잃어버린 부모를 되찾고자 하는 갈망을 지닙니다. 고독과 불안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속해 있고 싶어 하며, 보호받는 평화를 갈망합니다. 이러한 고아의 현실을 잘 아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아로 홀로 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언하시며, 성부께 청하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은 곧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아버지 없이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며, 그들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아버지께 속해 있음을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다른 보호자”, “진리의 영”(요한 14,16-17 참조)이라고 부르십니다. ‘보호자’로 번역된 말은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에서 유래합니다. 이는 법정에서 ‘변호인’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동시에 위로하고, 돕고, 곁에서 함께 머무는 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가장 불안하고 두려울 때, 이러한 보호자를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스승을 잃은 제자 공동체, 곧 고아와 같은 상태에 놓일 공동체에 성령은 가장 깊은 보호와 위로가 되어 주십니다.


제1독서에서도 이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필리포스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자, 많은 이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병자와 불구자들이 치유됩니다. 그 결과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사도 8,8)라고 전합니다. 이어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여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1베드 3,15)라고 권고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이들을 하나로 묶어, 한 하느님 아버지께 속한 형제자매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고아처럼 고독 속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글 _ 전봉순 그레고리아 수녀(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가톨릭신문 2026-05-04 오후 4:32:1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