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장미 경당, 회개와 완전한 용서의 시작 | 2026-03-25 |
|---|---|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붙어 있는 장미 정원은 프란치스코가 예수님께 완전한 용서를 얻기 전, 마음속에 일어나던 의심과 유혹을 이기기 위해 알몸으로 뒹굴었던 장소입니다. 13세기 말 문서에 등장하는 전승에 따르면, 이 장소에는 원래 장미가 아니라 가시나무 덤불이 있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이 덤불에 몸을 던져 뒹굴었을 때, 성인의 몸과 닿은 가시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장미의 기적’이 일어난 1215년과 1216년 사이, 프란치스코 주변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1210년경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인준받으면서 많은 사람이 그처럼 살겠다고 찾아왔지만, 성인의 엄격한 삶을 보고 떠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남아 있던 형제들 또한 수도회의 새로운 규칙인 ‘구걸하는 삶’ 안에서 설교자로서의 위치를 잡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의심은 공동체 안에서 유혹과 다툼으로 이어졌고, 성인에게도 공동체의 상황은 힘겨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프란치스코에게 유일한 해결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가시에 몸을 던진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에 일치함으로써 그 은총을 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인의 행동은 가시나무의 가시뿐 아니라 형제들 사이에 상처를 남긴 마음속의 가시까지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진정한 평화를 선물합니다. 가시가 사라진 장미 정원은 ‘인간적인 유혹과 의심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임을 말해 줍니다. 가시 없는 장미 정원 바로 옆에는 성인이 잠자고 기도하던 초막 위에 세워진 장미 경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성인이 생애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례와 설교를 위해 다른 도시를 다닌 뒤에도, 성인은 항상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형제들을 선교사로 파견하고, 매년 ‘돗자리 총회’를 열어 돌아온 형제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1260년, 성 보나벤투라의 뜻에 따라 제대가 있는 자리에 처음으로 작은 경당이 세워졌습니다. 제대 아래 프란치스코의 동굴에는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성인상이 있으며, 십자가 아래 놓인 나무는 설교대에 있던 것으로, 프란치스코가 포르치운콜라 경당에서 전대사를 선포할 때 올라섰던 것입니다. 경당 벽에는 피사의 바르톨로메오가 쓴 프란치스코 성인 전기를 바탕으로 한 벽화가 있습니다. 이 벽화는 1506년부터 1516년 사이 아시시의 티베리오가 ‘아시시의 완전한 용서’를 주제로 그린 다섯 장면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천사들과 함께 포르치운콜라에 도착한 성인은 탈혼 상태에서 성모님과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왔던, 세상 모든 이를 위한 전대사를 청합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예수님께 직접 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질 보다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때가 아님에도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의 기적을 보여주신 것처럼, 프란치스코 역시 성모님의 도움을 먼저 청합니다. 무릎을 꿇고 성모님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예수님께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전구해 달라고 청합니다. 성모님은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두 손으로 받아들이며, 얼굴은 예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눈빛은 무언의 압력처럼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프란치스코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축복을 내리시며 전대사의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사실들을 호노리오 3세 교황을 만나 설명하고 인준을 청하였습니다. 이 당시 전대사라는 것은 예루살렘이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거나 십자군으로 참전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작은 경당인 포르치운콜라에서 받을 수 있도록 교황의 인준을 청한 것입니다. 호노리오 3세 교황은 ‘장미의 기적’과 포르치운콜라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이것이 주님의 약속이자 선물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이를 인준하며, 기간을 얼마로 할지 묻습니다. 이에 성인은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기간이 아니라 회개하는 마음에 주어지는 전대사”라며, 세상 끝 날까지 모든 사람이 전대사를 받기를 희망했습니다. 성인은 아시시로 돌아와 포르치운콜라 옆에 설교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 ‘아시시의 완전한 용서’, 곧 전대사를 기쁜 마음으로 선포합니다. 순례나 십자군 참전 없이도, 부자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까지 누구나 하느님이 주시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회개(悔改)는 하느님 안에서 잘못 가는 길을 인식하고 올바른 길로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는 순간이고 하느님의 부름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크로노스라는 시간의 순서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바로 그 순간 결단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천국 문은 항상 열려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회개가 이루어진 장미 경당과 포르치운콜라 경당은 가장 작은 땅이지만 가장 복된 땅이라고 어찌 말할 수 없겠습니까!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
|
| [가톨릭신문 2026-03-25 오전 8:32:23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