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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수차례 오가며 사제 파견 요청… 곰실 공소, 춘천본당이 되다 | 2026-0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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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군·15개 공소 품은 춘천본당 탄생 구역 나누고 회장 셋 세워 공동체 관리 선교 확장 위해 춘천 읍내로 본당 이전 가진 논 팔아 새 성당 터 마련에 봉헌 본당이 세워지는 날은 한 장의 교구장 교령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그 교령이 종이 위에 내려앉기까지는 수년의 걸음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곰실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기까지 엄주언 말딩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풍수원성당과 명동대성당을 오가며 상주 사제 파견을 열성적으로 요청했다. 아니 ‘요청’이라는 말이 너무 가벼운지도 모른다. 당시 농촌에서 서울을 여러 차례 왕래한다는 건 곧 생업과 체력을 깎아내는 일이었다. 엄주언의 청원은 문자 그대로 발품과 인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왜 그토록 ‘상주 사제’를 원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곰실의 신자 수가 늘었고, 주변에 공소가 많았으며, 선교의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사제가 상주하지 않으면 성사 생활은 제때 이루어지기 어렵고, 공동체의 열기는 금세 식을 수 있다. 엄 말딩은 공동체가 커질수록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받쳐야 함을 알았다. 본당은 제도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삶의 안전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20년 9월 18일 전환점이 찾아온다. 종현성당(현 명동대성당)에서 한국인 사제 5명이 탄생했고, 그중 김유룡(필립보) 신부가 풍수원본당 보좌로 임명되는 동시에 새로 설립될 본당의 책임을 맡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논쟁점이 하나 생긴다. “본당 설립일이 9월 18일인가, 9월 22일인가?”
과거에는 「경향잡지」 등의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서품일과 동시에 춘천 지방 사목이 맡겨졌다는 이해가 퍼지며 9월 18일을 설립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죽림동 본당 70년사」는 교회법상 본당 설립일을 교구장이 설립 교령을 내린 날짜로 보아 1920년 9월 22일로 정정하였다. 근거는 뮈텔 주교 일기 6권의 1920년 9월 23일 기록, 곧 “어제 오후에 5명의 새 신부에게 임지를 정해주었다”는 취지의 문장이다. 임지 발령이 떨어진 ‘어제’가 9월 22일이므로, 법적 효력이 생기는 설립일도 9월 22일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김유룡 신부의 실제 부임은 1920년 10월 5일로 기록된다. 그 사이 보름가량 정규하 신부 곁에 머물며 곰실공소에 대한 정보와 당부를 들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렇게 새 신부에게 곰실은 종이가 아니라 사람과 땅의 언어로 건네졌을 것이다. 1920년 9월 22일 곰실공소는 곧바로 춘천본당이 된다. 이 본당은 춘천 지역에서 처음으로 상주 사제를 모신 신앙 공동체가 되었고, 훗날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모태가 된다. 설립 직후 관할구역이 얼마나 넓었는지를 보면 당시의 기대와 부담을 짐작할 수 있다. 춘천·홍천·화천·양구·인제, 그리고 경기도 가평까지 6개 군이 관할이었고, 관할 공소는 15개로 기록된다. 본당 신자 138명, 공소 신자를 합하면 총 1016명. 숫자는 이미 지역 교회의 규모였다. 다만 현실은 궁핍했다. 신자들이 너무 가난해 성당도 짓지 못했고, 초가집 한 채를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하지만 춘천본당의 첫 공간이 초가집이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마음을 붙든다. 신앙은 웅장한 벽돌보다 가난한 마음의 결속으로 더 오래 버티기도 한다.
초가집 한 채,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 이 본당이 세워지기까지 엄말딩이 했던 일은 단지 ‘청원’만이 아니었다. 그는 공동체를 실제로 운영할 구조를 만들었다. 신자 수가 늘면서 기존 강당으로는 수용이 어려워지자 더 큰 공소 강당을 마련했고, 마을의 양 참봉과 함께 건립에 매진했다는 전승도 있다. 성당 건축을 직접 도맡다시피 하고, 사제관을 짓고, 우물을 팠다는 기록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면서 ‘손으로 세우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또 회장을 세 사람 두어 구역을 나누었다. 윗 너부랭이, 중간 너부랭이, 신촌리 일대가 각각 역할을 나눠 공동체가 흩어지지 않도록 했다. 공동체는 열정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역할과 책임이 분명해야 한다. 엄 말딩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유룡 신부가 부임하면서 곰실은 비로소 ‘본당’의 형식을 갖춘다. 성사가 규칙적으로 집행되고, 교육과 훈련이 체계화되며, 주변 공소를 돌보는 중심이 생겼다. 본당 승격 3년 만인 1923년 6월 홍천 송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이는 춘천 지역 선교가 곰실을 중심으로 확장되어 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곧 한계도 드러난다. 곰실은 춘천 읍내에서 떨어진 외곽이었다. 선교의 폭을 넓히려면 도심으로 나아가야 했다. 김유룡 신부와 신자들은 춘천 읍내로 본당을 이전할 계획을 세운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가난한 공동체가 도심에 터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애련회(愛煉會)’다. 애련회는 연령(연옥 영혼)을 위한 단체로 15세 이상 신자가 가입했고, 회원들은 1인당 50전씩을 거두어 종신회원 형태로 기금을 만들었다. 그 기금으로 농토를 사 수확을 늘렸고,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로 받는 장리로 기금을 불렸다. 기록에는 “쌀 한 가마니당 세 말”이었다고 전한다. 또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짚신 삼기(한 켤레 5전) 같은 노동이 재정이 되었다. 엄주언이 자신의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 새 성당 터 마련에 보탰는데, 성가정상 주변과 주차장 자리가 그의 땅이었다는 구체적 기록도 있다. 땅은 농촌에서 가장 확실한 생계 기반이다. 그것을 내놓는다는 것은 ‘헌금’이 아니라 ‘삶을 바치는 일’에 가깝다. 엄 말딩에게는 도심으로 이전하는 것이 단지 편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춘천 전체를 대상으로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한 전략이자 바람이었다.
1928년 춘천 시내로 본당 이전 마침내 1928년 본당은 춘천 시내로 이전한다. 당시 약사리 418번지의 ‘김영식’이란 사람의 집을 사서 성당으로 개조해 사용했고, 아래 마당과 수녀원 터를 매입한다. 훗날 성골롬반의원이 세워진 곳이다. 이 시기 춘천 읍내에는 천주교인이 거의 없었지만, 곰실 신자들의 삶이 전교의 설교가 되었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임종이 가까운 이에게 대세를 받게 해주고, 죽음 앞에서 만사를 제치고 장례를 치러주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바른 생활을 칭송했고, 자발적 입교자가 늘었다. 엄 말딩은 여기서도 중심에 있었다. 그는 신앙을 자기 집에 가두지 않았다. 신앙이 ‘남의 생’에 닿도록 만든 헌신자였다. 1928년 본당이 죽림동으로 이전한 뒤 곰실은 다시 춘천본당에 딸린 공소가 된다. 그러나 1930년대 곰실의 교세는 여전히 뜨거웠다. 1931~1932년에는 228명, 1936~1937년에는 283명으로 교인이 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오히려 춘천본당보다 교우가 많았다는 설명은 곰실이 단지 ‘옛 발상지’가 아니라, 1930년대에도 살아 움직이는 선교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평신도 엄주언 개인의 삶은 1930년대에 이미 널리 회자된 바 있다. 1935년 「경향잡지」 1월호에는 엄 말딩의 회갑 잔치가 언급되었다. 기사는 그가 30년 전 천진암에서 돌아와 고은리에 단독 교우로 가난하게 살던 시절부터, 30년 후 약 250명의 교우와 12칸 강당, 사제 사택을 갖춘 공소를 세우고, 마침내 신부를 모시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회갑 당일 그의 답사가 전해진다. “양심으로 천주께서 계신 줄을 알고, 죄를 지으면 두려운 줄 알면서도 왜 천주를 공경치 않느냐”는 호소는 신학의 문장이 아니라 삶의 문장이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낸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의 말은 무게가 있었다. 엄주언의 삶의 무게가 만들어낸 곰실본당의 설립일 1920년 9월 22일은 결코 하나의 날짜가 아니다. 가난한 초가집에서 시작된 지역 교회의 심장박동이 처음으로 공식 이름을 얻은 날이다. 그리고 그 이름 뒤에는 끝내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엄주언 말딩의 걸음이 있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그가 떠난 뒤에도 이어진 곰실의 시련과 회복, 그리고 ‘발상지’라는 기억이 어떻게 제도로, 공동체로 살아남았는가 하는 일이다. <계속> ![]() 이현준(프란치스코, 한림대 강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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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평화신문 2026-03-18 오전 10:32:23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