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 [말씀묵상] 사순 제4주일 | 2026-03-11 |
|---|---|
요한복음 9장 1절에서 41절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를 고치신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병 고침을 넘어, 예수님이 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고통 속에 있던 사람이 믿음을 고백하는 존재로 변해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이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시선과 그 시선에 마음을 연 한 인간의 변화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 대개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거나, 자기 관심에 따라 선택적으로 보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은 이러한 우리의 시선과는 다른 예수님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요한 9,1) 여기서 ‘보셨다’는 스쳐 지나가는 시선이 아닙니다. 본문의 그리스어 동사 호라오(?ρ?ω)는 기본적으로 ‘보다, 인식하다, 깨닫다’는 의미로, 그 사람의 고통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시선을 뜻합니다. 이 시선은 예수님의 구원 행위가 시작되는 첫 순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눈먼 이의 신체적 조건만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와 그 안에 깃든 고통과 외로움을 보셨습니다. 이 시선은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들으시고, 살펴보시고, 알게 되셨다’(탈출 2,24-25 참조)라는 하느님의 시선과 이어집니다. 약자 위에 머무는 예수님의 시선은 곧 사람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시선입니다. 반면 제자들은 이 사람의 고통 앞에서 그 원인을 찾으며 죄와 연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 그의 고통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에는 단죄도, 그 원인을 따지는 판단도 없습니다. 그분의 시선에는 오직 연민과 구원의 의지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는 행위는 창세기 2장에서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던 창조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치유는 단순히 눈을 뜨게 하는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창조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눈먼 이에게 ‘파견된 이’라는 뜻의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게 하십니다. 이는 이 치유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람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일임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 이는 육안의 문제가 아니라, 겸손과 교만의 문제입니다. 눈먼 이는 겸손으로 마음의 눈을 떠 예수님을 알아보았지만, “우리는 잘 본다”(요한 9,41)라고 확신한 바리사이들은 교만으로 그 눈을 감았습니다. 자기 확신에 갇힌 시선은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를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는 본다고 여기지만,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제1독서는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겉모습을 넘어 그 사람의 중심과 가능성, 상처까지 함께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눈먼 이를 바라보신 방식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라고 선언합니다. 빛은 마음의 눈이 열릴 때, 곧 사랑과 겸손 안에서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눈이 열리면 시선도 달라집니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사람의 내면을 헤아리는 마음의 시선으로 바뀝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은 눈먼 이의 눈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열어 믿음으로 이끄셨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시선을 닮아갈 때 사람을 살리는 존재로 변화됩니다. 사순 시기 한가운데서 맞이하는 기쁨의 라에타레(Laetare) 주일은, 바로 이런 시선의 전환이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제 우리는 단지 보는 눈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의 깊이를 존중하는 마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글 _ 전봉순 그레고리아 수녀(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
|
| [가톨릭신문 2026-03-11 오후 1:29:21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