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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원치 않는 길을 걸으셨네 | 2026-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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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맞이하는 아침은 선물입니다. 아침이라는 선물 외에 다른 선물도 여럿 당도한 봄날. 제자가 노래를 하나 보내주었고, 동료 선생님은 책을 보내주셨네요. 제자는 랩을 참 잘해서 아이돌로 성공할까 싶던 아이였는데, 신학대학원에 가더니 이제는 교회에서 신앙의 길을 이끄는 사목자가 되었네요. 학생들은 가능성의 씨앗입니다. 저는 그 씨앗에 물을 주는 사람. 가능성을 믿고 정성 어린 마음으로 마주하며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먼 지방에서 서울로 와서 보니 지역의 격차가 너무 크다고, 고향에 남은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던 아이였습니다. 사랑 많은 그가 기도하는 어른이 되어 참 좋습니다. 그가 보내온 성가를 듣는 봄날 아침이 그대로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길 내 주님이 가신 길 아무도 원치 않는 길을 내 주님이 걸으셨네.” 고통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길에 대한 노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주님이 따르신 순종의 길은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길 같아요.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섬겨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더욱 그래요. 자기 몸의 안위를 생각할 때는 어떤 일을 하는 동기 부여가 쉽게 되지만 그와 반대되는 예수님의 순종은 얼핏 이해가 잘되지 않지요. 타인을 구원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요. 하지만 지금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깎아가며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계시기에, 주님 걸으신 순종의 길, 그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돌아보게 합니다. 다시 노래를 듣습니다. “고통의 십자가를 조용히 지고 가신 주님은 순종하셨네 그의 몸을 버리셨네.” 몸을 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이 지상에서 몸을 버리는 것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병원 중환자실에서 고통받으셨던 3일간, 이 성가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고통에 몸을 비틀고 얼굴을 찡그리시는 아버지를 보며 울면서 생각했지요. ‘아버지,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으셨는데, 인간됨으로 겪는 이 고통을 부디 조금만 참으세요. 아버지 조금만 더 참으세요.’ 어쩌면 참 야속할 수도 있는 딸의 기도였습니다.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을 저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다시 떠올리지만, 사실 이 길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영적인 실천을 통해 이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하실 때, 여기서 ‘날마다’는 매일 죽음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십자가의 신비를 이야기하니까요. 한편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는 그 순종의 길이 절대적인 비움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몸을 완전히 비우고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는 이제 죽음 너머에서 제게 질문하십니다. 유교의 관습으로 2대 양자의 삶을 사신 아버지는 양쪽 집안의 무게를 오롯이 지면서 사셨기에 참 외로우셨을 것 같습니다. 묵묵히 참아가며 걸으신 그 조용한 길은 어쩌면 예수님을 닮은 작은 순종의 길이었음을, 주어진 운명을 불평 없이 따르신 아버지의 삶이 곧 믿음의 삶이었다 싶습니다. 지금 제게,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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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신문 2026-03-11 오후 1:29:21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