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 사람, 희망의 안무가 | 2025-12-17 |
|---|---|
|
익숙한 고향길, 집으로 가는 도중, 방향을 바꾸려 큰 몸체를 움직이는 트럭 하나와 뒤에서 쫓아 오던 승용차 사이에 끼어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린 적이 있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초 디지털화되어 가는 시대 안에서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 모르는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것 같아 잠시 상념에 빠졌다. 우리를 둘러싼 이러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진단 안에서도 한 발 더 들어가 삶의 본질적 질문을 던져보면, 가장 기초가 되는 의식주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크게 변화됨 없이 인간 노동을 필요로 한다. 여전히 밥 짓고, 파와 마늘을 다듬어 살림을 산다. 디지털 문화가 손안으로 들어와 있어도 사람은 정성을 다해 일상을 살며 기도하고 고통을 직면한다. 기본권이 박탈당했을 땐 아낌없이 투쟁해 그것을 다시 성취하려 온몸으로 저항하여 바른길을 내기 위해 함께 연대한다. 쉽게 변화되어 가는 이 시대는 계승하고 싶은 아름다운 가치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것들이 밀려와, 머물면서 존재를 들여다보고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어떻게 움직여지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사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듯 초고속으로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여전히 수녀원에서 하느님 현존 안에서 근원을 향해 침잠해 착복, 첫 서원,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는 그 옛날 사막에서 수도하기 위해 머물던 은수자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행성 지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전 지구적 차원의 긴급한 사안들 안에서도 늘 새로운 희망은 스며든다. 단적으로 하느님의 강생, 이 어마어마한 사실 앞에서 우리가 어찌 희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있게 하신 창조주,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취약한 아기로 탄생하신 그 신비를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희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얽히고설킨 문제들,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늘 처음으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내가 누구인지를 물어야 한다. 거기서 다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점검하고 신발을 고쳐 신어야 한다. 희망은 있다. 희망 안에서 다시 우리 사람만의 고유한 춤사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신앙이 주는 기적, 그렇다. 우리에게는 애써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함께 보존할 기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2012년, 홀로 죽어가다 뇌사 판정을 받은 프랑스의 어린 메일린을 살려낸 기적 이야기를 익히 들은 바 있다. 가족과 메일린의 언니가 다니던 학교의 학부모는 19세기 교황청 전교회를 설립한 폴린 자리코의 전구를 청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기도의 기적이 우리에게는 아주 오래된 새 희망의 표지가 아니겠는가. 매일 꾸준히 기도하며 걸어 온 이 신앙의 길을 내일도 여전히 희망하며 걸어가는 것에 우리의 미래가 있지 않겠는가. 레오 14세 교황에 의해 올해 11월 교회 학자로 선포된 성 존 헨리 뉴먼 추기경(John Henry Newman, 1801~1890)이 쓴 시의 일부로 이 은혜로운 성탄의 빛 안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의 존재를 주님께 봉헌한다. “이끌어 주소서, 온유한 빛이여, 이 암울한 세상 한가운데서 저를 인도하소서. 밤은 깊은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사오니 저를 인도하소서. 제 발걸음을 지켜주소서. 먼 곳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 걸음만 밝혀주시면 족하겠나이다.” 글 _ 이은주 마리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 그동안 ‘방주의 창’을 집필해 주신 이은주 수녀님, 나승구 신부님, 최진일 교수님, 정석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
|
| [가톨릭신문 2025-12-17 오전 8:32:20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