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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필사로 하느님 숨결 느껴요” 2025-11-19

누군가는 모두 잠든 새벽마다 책상 앞에 앉아 말씀을 마주하며 펜을 들었고, 본당 설립 20주년을 맞은 공동체는 한마음으로 필사 노트를 채워 나갔다. 외우듯 적어 내려간 말씀은 삶의 위로가 되었고, 가정의 변화를 이끌었으며, 공동체의 기쁨으로 피어났다. ‘말씀에 빠진 사람들’은 성경 필사를 통해 하느님의 숨결을 느꼈고, “신나고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수원교구 제2대리구 안산성안나본당(주임 남승용 십자가의 요한 신부)의 전 신자 성경 필사와, 성경을 무려 26번 완필한 제1대리구 고덕본당 윤정구(토마스·80) 씨의 이야기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지 전한다.


설립 20주년 맞아 ‘성경 이어쓰기’한 안산성안나본당
“3개월 만에 신구약 필사 완성…동행의 기쁨 누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제2대리구 안산성안나본당 전 신자 성경 필사는 본당 주임 남승용 신부의 창세기 1장 1절 필사로 시작됐다. 남 신부는 “설립 20주년을 맞은 공동체의 외적 복음화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적 복음화라고 생각했다"며 “신앙생활의 중심인 말씀을 생활화하고자 필사를 계획했다”고 전했다.


올해 1월 성당 1층 만남의 방 한편에 커다란 성경 필사 노트가 놓였고, 남 신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자 한 자 성경을 써 내려갔다. 이 모습을 본 신자들도 자연스레 참여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하루에 한 장을 쓰고 가고, 어떤 이는 새벽 미사 후 두 시간 넘게 머물며 필사에 몰입했다. 얼굴은 몰라도, 말씀의 은총은 다음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김윤영(율리타) 씨는 “앞선 사람이 쓴 말씀을 이어 쓰다 보니 서로의 얼굴은 모르지만 일체감과 동행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경숙(안나) 씨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한 글자, 한 페이지씩 쓰면서 공동체가 하나로 묶이는 느낌을 받았고, 하느님의 말씀이 공동체 안에 살아 있음을 체험했다”고 전했다.


성경을 필사하는 여정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의 신앙에 변화를 불러왔다. 민현애(아셀라) 씨는 “집에서 성경을 보고 쓰다 보니 냉담 중이던 남편도 성경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며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고 남편도 다시 성당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고된 삶 속에서 말씀은 빛이 되기도 했다. 편윤미(스콜라스티카) 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정에 어둠이 드리웠지만,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9)라는 말씀을 통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본당은 78명의 신자가 동참한 가운데 3개월 만에 신구약 3868쪽 전체를 필사했다. 이들은 단순히 필사를 마쳤다는 것 이상의 기쁨을 얻었다. 신자들은 “성경 필사를 하며 내 삶에 하느님이라는 든든한 동반자가 함께하고 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며 “기쁘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1996년부터 신구약 26번 완필한 윤정구 씨
“새벽 4시 필사로 하루 시작…말씀 안에서 위로·희망 얻어” 



“26번이나 썼지만 언제나 새롭고 또 기쁜 마음입니다.”


윤정구 씨는 1996년 첫 성경 필사를 시작해 올해로 26번째 성경을 완필했다. 교구에서 성경 필사를 가장 많이 한 신자로 제29차 성경잔치에서 총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에게 특별 선물을 받았다.


윤 씨의 하루는 새벽 4시, 성경을 쓰며 시작된다. 아침뿐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책상에 앉아 필사를 이어가기 때문에 그의 책상에는 늘 성경과 노트, 붓펜이 펼쳐져 있다.


“하느님께 시간을 봉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경을 쓰는 시간은 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자 봉헌입니다. 가끔 집을 비울 때면 미리 그날 분량만큼 써놓고 갑니다. 매일 꾸준히 쓰면 신구약 완필에 10개월 정도 걸립니다”


성경 필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본당 주임신부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신부님께서 성경을 쓰면 눈도 맑아지고 정신도 또렷해진다고 하셔서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평소엔 몸이 아플 때도 있지만 정작 성경을 쓸 때만큼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팔십이 넘은 지금도 돋보기 없이 글씨를 읽고 성경을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죠.”


성경 필사는 윤 씨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는 기쁨을 체험했다.


“소 키우던 일이 잘 안되기도 했고, 농사지을 땅이 없어 고생도 했어요.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하느님을 믿고 따르자고 다짐했죠. 그렇게 믿고 나니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방 벽을 가득 채운 성경 필사 노트는 하느님께 받은 훈장과 같다.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봉헌한 하루는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기쁨을 윤 씨에게 선물했다.


“그날 쓸 분량을 정하고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쓴다면 성경 필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5-11-19 오전 9:12:3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