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

  • 전례성사
  • 가톨릭성미술
  • 가톨릭성인
  • 성당/성지
  • 일반갤러리
  • gallery1898

알림

0

  •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밀알 하나] 비례와 균형 2025-11-19

길을 걷다 보면 한쪽 어깨가 처진 어르신들을 자주 보게 된다. 세월의 무게가 한쪽으로 더 기울어진 듯한 모습은 내 마음의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자신도 그러한 어깨의 비대칭을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원인은 20여 년 전 앓았던 대상포진의 후유증이었다. 오른쪽 가슴과 쇄골 부위, 등짝, 늑골을 휘감던 극심한 통증은 내 몸을 오랫동안 비틀어 놓았다. 


처음에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고, 하루 대부분을 통증 속에서 보내기도 했다.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며 처방받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말 안 듣는 자식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세요”라는 냉정한 위로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여러 동양, 서양 의학의 도움을 받아 지금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여전히 은은한 통증은 남아 있지만, 이제 그것마저도 감사로 받아들인다. 병의 흔적은 몸에 남았으나 더 큰 은총은 그 과정을 통해 내 마음이 좋은 단련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의 회복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인간은 누구나 병을 겪고,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이사야 예언자는 삶을 이렇게 읊고 있다.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이사 65,20)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 21,18)라고 하신 말씀처럼, 늙고 병드는 일은 인생의 숙명이고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병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원망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때, 고통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은총의 도구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으시고 고통과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다. 그분의 길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수많은 십자가가 주어진다. 내가 겪은 병고와 어깨의 비대칭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내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하는 도구였다. 상처는 고통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은총의 표지이기도 하다.


건강은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어깨와 가슴에 불편함을 안고 살지만, 그것이 기도의 이유와 소재가 된다. 불편은 짐이 아니라 은총을 더 가까이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주어진 고통을 원망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그것을 통해 제가 성장하도록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십시오.”



글 _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장) 

[가톨릭신문 2025-11-19 오전 9:12:3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