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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프랑스의 르네상스 2025-11-19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양식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을 즈음인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는 반세기 전에 아라곤의 알폰소 5세가 점령한 나폴리 왕국의 왕위 계승을 명분으로 이탈리아를 침공하였습니다. 프랑스는 밀라노와 피렌체를 거쳐서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2세가 이끄는 군대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보급로가 차단되는 등 전세의 악화로 전리품도 못 챙기고 철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 새로운 건축 양식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샤를은 퇴각의 상황에서도 르네상스 건축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이탈리아의 건축가와 조각가 이십여 명을 프랑스로 데려갔습니다.


문화의 전달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는데, 그중에서 전쟁은 파급력이 큽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프랑스에 전달되는 과정이 그랬는데, 특히 1494년에서 1559년까지 60여 년 동안 지속된 이탈리아 전쟁은 르네상스 문화가 알프스 이북으로 전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후 프랑스는 이탈리아로부터 르네상스 건축 이론서를 수입하고 건축가를 초빙하였으며, 프랑스 건축가를 이탈리아로 보내 건축술을 배워 오도록 하였습니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적 가치를 먼저 알아본 문학 분야에 비해, 건축 분야는 신 중심의 고딕 양식이 여전히 강세를 띠었기 때문에, 그들이 인간 중심의 인문주의를 배경으로 발전한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는 아직 로마의 고전주의에 대한 인식이 이탈리아 건축가들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의 초기 르네상스는 장식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르네상스 건축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고딕 건축물에 르네상스 장식을 덧붙이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건축물은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장식이 혼용되어 나타났습니다. 결국 초기에는 고딕 건축의 장인들이 주도하였고, 점차로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가들이 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 개혁 시대였음에도 프랑스는 서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로마와의 관계가 원만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이 프랑스 지역을 점령했던 시기에 고전주의 전통이 전파되어 프랑스에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 잔해가 남아 있었고, 이탈리아와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활발한 문화 예술의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초기 르네상스(1500~1540) 시기에는 샤를 8세와 프랑수아 1세의 적극적인 르네상스 장려로 성당이나 성(城, 샤토) 등에서 고전주의 건축 양식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주류 건축 양식은 후기 고딕의 플랑부아양 양식이었는데, 프랑스 장인들은 이 양식의 창과 트레이서리에 오더와 신전 파사드, 아치와 조적을 장식의 형태로 덧붙였습니다. 이 시기의 성당으로 ‘생테티엔 뒤 몽 성당(?glise Saint-?tienne-du-Mont)’과 ‘생퇴스타슈 성당(?glise Saint-Eustache)’을 들 수 있습니다.


6세기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파리의 주보 성인인 성녀 제노베파에게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이후 13세기에 인구 증가로 새로운 성당이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되면서 이 성당은 ‘생테티엔 뒤 몽 성당’으로 이름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파리에 대학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1494년에 새로운 고딕 성당의 건설이 시작되었고, 1540년 플랑부아양 양식의 성가대석과 제단이 완공되었으며, 이후의 공사에서 창문과 조각품에 새로운 르네상스 양식이 나타났습니다.


성당의 파사드는 3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지상층은 신전 파사드의 페디먼트 아래로 중앙 출입구가 있고, 중간층에는 반원형 페디먼트와 고딕 양식의 장미창이 겹쳐 있으며, 최상층은 삼각형 페디먼트에 타원형 장미창이 설치되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길이가 69미터에 폭이 25.5미터이며, 천장은 리브 볼트로 되어 있고, 네이브는 원형 기둥이 반원 아치와 함께 두 개 층의 아케이드로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대지의 형태에 따라 중심축이 조금 휘어져 있습니다. 


이 성당의 특징은 네이브와 성가대석을 분리하는 정교한 조각의 루드 스크린(Rood screen, 십자가가 올려진 스크린)이 세 개의 아케이드로 받쳐져 있는 점입니다. 이처럼 생테티엔 뒤 몽 성당은 고딕 양식의 구조에 르네상스 양식의 장식이 어우러진 프랑스 르네상스 성당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에 프랑스로 이주하여 르네상스 건축을 전파한 이탈리아 건축가 가운데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Sebastiano Serlio 1475~1554)가 있습니다. 그는 브라만테의 로마 건축 공방 출신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에 참여하면서 로마 고전주의 건축을 배웠고, 같은 공방 출신의 페루치로부터 투시도법을 배웠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산소비노, 산미켈리, 팔라디오 등과 교류하였고, 「건축 7서」를 저술하였으며, 앙시 르 프랑 성(Ch?teau d''Ancy-le-Franc)을 통해 프랑스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를 정립하였습니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전성기(1540~1560)는 피에르 레스코(Pierre Lescot, 1510~1578)에 의해서 열렸고, 필리베르 들로름(Philibert de l''Orme, 1514~1570)이 완성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세를리오가 이탈리아의 고전주의에 의존한 것에 반해 중세 전통의 고전주의를 구사했는데, 그 모습이 아네 성(Ch?teau d''Anet)의 경당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경당은 정사각형 안에 놓인 원형이 중심을 이루는 중앙집중형 평면을 갖고 있습니다. 정사각형의 한 변에 3베이의 전실이 있고, 네 변 모두에 좌석이 놓여 있으며, 모서리에는 계단실과 부속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원형의 중심부에는 돔이 있는데, 중심부를 그릭 크로스 평면의 크로싱으로 볼 수도 있으나 중심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경당 전체에 상응하기 때문에, 원형 구조물에 부속 공간이 첨가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판테온의 방식으로 지어진 돔은 자신의 지름보다 더 높은 드럼으로 인해서 수직성이 강조되었습니다. 랜턴 역시 돔에 비해서 과하게 크고 높으며, 랜턴보다 높게 두 개의 첨탑이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모습이 높은 첨탑이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보입니다. 이는 들로름이 중세 고딕의 특징을 르네상스 고전주의로 해석한 것입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가톨릭신문 2025-11-19 오전 9:12:3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