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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눈물 2025-11-04


“선생님, 지금 출발합니다. 솔이도 함께 가도록 준비시켜 주십시오.”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 이른 새벽에 걸려 온 L군의 전화이다. 지난번 스승의 날 모임에서 의논된 일이다. 춘천에 사는 J군의 농장이 피서지로는 적격이니 이번 여름에는 나와 몸이 불편한 내 아들 솔이와 함께 춘천에서 모이자고 하였다. J군도 적극 환영하였다. 제자가 운전하는 차에 편안히 기대어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감회가 더욱 새롭다. 짙은 녹음의 산 그림자를 담고 흐르는 강줄기가 잘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이다.
“얼마 전 이곳을 지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경치가 대단히 아름다워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12시에 다른 팀과 춘천에서 만나기로 하여 이곳을 구경하고 가기 위해 이른 시각에 출발해서 왔다는 공치사가 조금도 무색하지 않다. 강물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통유리 카페로 안내를 한다. 수상 스키어들이 보트에 매달려 광활한 한강을 독차지하려는 듯 시원하게 달린다.

“이곳도 얼마 전에 들렀을 때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선생님과 함께 오고 싶었습니다.”

갓 구워낸 빵이며 음료수를 쟁반 가득 담아온 L군이 말한다. 

“솔아, 많이 먹어.” 

몸이 불편한 내 아들 솔이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동기가 이렇게 살갑게 대할 수 있을까. 울컥 목이 메이게 한다.

12시에 유명하다는 춘천 막국수 집에서 일행과 합류를 했다. 나보다도 아들을 더 반가워하며 정겹게 맞아준다. 식당이 떠나가도록 떠들썩한 녀석들의 모습이 여전히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이 제자들에게는 내 교직 생활에서 잊을 수가 없는, 잊히지 않는 아픈 기억이 있다.

내 반의 Y군은 학교에서 소위 문제 학생으로 선생님들 간에 익히 알려진 학생이었다. 학기 초에 교칙을 크게 위반하여 벌을 받고, 또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퇴학을 하겠다는 부모님과 함께 약속의 각서까지 썼다. 한동안 조용하게 잘 지내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적어도 사내 녀석이 고등학교는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교실 뒷벽에 붙어있는 표어대로 너는 이 세상에 한사람밖에 없는 귀한 존재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던 어느 날 학생부에서 또 연락이 왔다. 담임 선생님을 찾는다.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학생부장님의 책상 위에는 학기 초에 썼던 각서가 놓여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이제는 도리가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교육상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 길로 바로 교장실로 내려갔다. 교장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장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지도한 탓입니다. 그러나 간절히 부탁 올립니다. 한 번만 더 Y군을 지도할 기회를 주십시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저도 교직을 그만두겠습니다. 한 번만 더 지도할 기회를 주십시오.”

교실로 돌아와 무거운 마음으로 종례를 할 때였다. Y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착잡한가슴이 북받쳐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힘들 때면 찾는 내 자리 상담실로 달려가 한없이 울었다.
교사의 눈물의 힘은 위대한 것이었다. 완고하시던 교장 선생님도, 학생부장님의 고집도 녹여주는 정화수가 되었다. 그보다도 우리 학생들이 처음 보는 선생님의 눈물에 한마음이 되어, Y군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어느 반보다도 사랑이 넘치는 우리 반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사랑하는 내 아들들이다. 

글 _ 정점길 (세례자 요한,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 교장)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 38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2006년 3월 「한국수필」에 등단, 수필 동호회 ‘모닥불’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 카리타스 봉사단 초대 단장, 본당 사목회장, 서울대교구 나눔의 묵상회 강사, 노인대학 강사, 꾸르실료 강사, 예비신자 교리교사, 성령기도회 말씀 봉사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의정부교구 복음화학교의 교장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11-04 오후 7:32:1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