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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주님, 저희가 하나 되게 하소서! 2025-09-23


그리스도인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지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자신과 싸워야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지독한 권력에의 의지라고 봅니다. 그것을 비워내고 그 안에 우리의 하느님을 담을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신앙인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 부르심의 현장은 수도원이나 피정의 집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가까이할 수 없고, 평범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신앙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렵게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삶은 참으로 근원적이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에 달리고, 그곳에서 고통 속에 죽은 분을 인간 승리의 표지로 인식하고, 십자가를 자기 자신의 표지로 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십자가를 제단 위에 놓고, 그리스도인의 가정마다 십자가를 벽에 걸고, 그리스도인의 묘지 위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에 의해 다음과 같은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혹독한 고통과 어둠 그리고 죽음에 대해 회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둠과 죽음의 현실에 대해 그 현실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신앙을 가지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에서 아픔이 다가왔을 때, 진통제처럼 신앙의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과 죽음의 잔을 자진해서 마셔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과 명예와 이념들을 포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속적인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영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고, 그때 하느님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 여러 신앙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 안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신앙 안에서의 일치였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사람에 의해 상처받고, 사람의 표양에 실망하여 신앙 자체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먼저 저 자신부터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숙고의 시간을 가졌는데, 대개는 신앙의 연륜이 깊고 열심히 하신 분들이 자신의 신학이나 신앙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다른 분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강요하면서 다른 분의 신앙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이 고유하듯이 인간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신앙 모습도 각자에게 고유하게 부여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신앙에는 우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신앙 모습을 인정하고, 하느님 안에서 일치해 하나가 되어 공존하기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준엄히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 나눠야 하지,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하는 각 인간의 차이를 선악으로 구분하는 착각으로 인하여, 하느님을 떠나게 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분들도 특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저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입니다. ‘주님, 저희가 교만한 판단으로 사람에게 상처 주어 주님을 떠나게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고, 사랑으로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김영수 루치오
[가톨릭평화신문 2025-09-23 오후 5:52:12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