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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과 음악은 ‘고통’에서 시작해 ‘열정’으로 순환” | 2025-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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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양성원(요셉) 50대 후반 나이에도 연습 또 연습 새로운 곡 배우는 건 어렵지만 매일 조금씩 향상하니 재미있어 하느님 목소리 들으려는 수도자처럼 연주자들도 작곡가 목소리 갈망해야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막달레나) 모던음악 활동하다 고음악 하면서 현에서 소리 내는 데만 1년 걸려 고음악은 인간적·자연적으로 연주 유럽 수도원에서 공연할 때면 영적인 체험·평안함 와 닿아 마포문화재단이 기획한 제10회 M 클래식 축제가 한창이다. 12월 6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 일원에서 22차례에 걸쳐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이번 축제의 주제는 ‘낭만시대’. 베토벤·브람스·슈베르트·쇼팽·드보르작 등 낭만시대 대표 작곡가들의 명곡을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피아니스트 백혜선,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 바리톤 박주성, 첼리스트 이호찬(요한 사도) 등이 연주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축제에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더욱 눈에 띈다. 26일에는 첼리스트 양성원(요셉)씨와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가, 10월 2일에는 김은식(막달레나)씨가 속한 앙상블 일 가르델리노가 바흐의 음악을 선보인다. 양성원 : 학기 때는 주로 서울에 있고, 방학 때는 아무래도 유럽에서 활동이 많죠. 김은식 : 같이 다니는 건 아니고, 여기서도 가끔 만나고 거기서도 가끔 만나요.(웃음) 양성원 : 그건 아니죠.(웃음) 분야가 완전히 다르긴 해요. 우리가 모던이라고 할 때 바흐부터 20세기 음악을 얘기하니까. 김은식 : 바흐부터라고요? 바흐가 바로크의 정점인데. 양성원 : 바흐가 딱 중간, 연결고리죠. 김은식 : 시대가 아니라 악기 구조로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최근 마포아트센터에서 두 연주자를 만났다. 클래식 전문지가 아니기에 간략히 언급한 이들의 ‘완곡한 의견 개진’은 ‘부부이고 모두 현악기 연주자이지만 한 무대에 서는 일은 드물겠다’는 질문에 한참 이어진 대화 내용이다. 남편 양성원씨는 첼로를, 아내 김은식씨는 시대악기·원전악기로 불리는 바로크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양성원 : 공연 때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이 사람이 걱정하고 있어요. 첼로는 4줄이지만 비올라 다 감바는 6~7줄 악기거든요. 6~7줄 악기를 위해 쓴 곡을 4줄로 연주하는 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죠. 김은식 : 오히려 굉장히 좋은 시도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낭만시대 모든 작곡가의 롤 모델이 바흐였어요. 바흐라고 하면 대위법으로 딱딱하고 엄숙하고 종교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데, 인간적인 고뇌·좌절·분노·기쁨 등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거든요. 친구였던 양가 어머니로 인해 자연스레 알게 된 이들은 부부의 연까지 맺었다. 덕분에 더욱 풍성한 음악가 집안이 됐다. 양성원씨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인 고 양해엽(기욤, 1929~2021) 전 서울대 음대 교수이고, 형인 양성식(그레고리오)씨도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양성원 : 서로 존재하는 건 알았는데, 성인이 돼서 음악회 때 만났어요. 2년 연애하다 결혼했죠. 그런데 사실 집에서는 음악보다는 애들 얘기를 많이 해요. 여느 부부와 같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음악을 취미로만 합니다. 둘째는 군 복무 중이고, 첫째는 전공 살려 좋은 직장 다니니까 자기 길을 찾아간 게 더 기특하죠. 김은식 : 아이들이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니까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서로 덜 예민해서 좋은 것 같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과거 기사들을 검색하다 보니 나이가 더해질수록 양성원씨의 외모가 부쩍 부친과 닮아간다. 7살에 첼로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첼로와 함께한 지 반세기다. 연주자로서, 연세대 음대 교수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는 만큼 교육자로서도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많이 생각할 듯하다. 양성원 : 가끔 깜짝깜짝 놀라요. 저한테서 아버지 얼굴이 나와서.(웃음) 50대 후반에도 이렇게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걸 알았다면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연습이 즐거워요. 요즘 새로운 곡을 배우고 있잖아요. 너무나도 어려운데, 매일 조금씩 향상한다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물론 힘들죠. 그런데 고통으로 받아들일지, 축복으로 받아들일지는 제 마음인 것 같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율하고 바흐의 명곡을 연주한다! 제 손가락 밑에서, 제 활 밑에서 악기를 통해 울리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거든요. 김은식 : 지금 저희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하겠다’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기도 많았어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는 시기가 다르잖아요. 저도 모던 악기를 전공한 뒤 활동을 많이 했는데, 고음악을 하면서 퓨어 거트라고 현에서 소리를 내는 데만 1년이 걸렸어요. 양성원 : 제자들이 저희를 두고 롤 모델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의 노력이 있었다고 항상 얘기해요. 부부생활도, 연주나 삶의 모습도 중장기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요. 사회적으로 많은 걸 짧은 시간에 얻으려고 하는 게 안타까워요. 저는 ‘passion’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사실 순환이에요. 라틴어 어원은 고통이거든요. 사랑으로 열정으로 바뀌기 전에 고통이 있는 거예요.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있다. 신이 주신 탤런트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을까. 김은식 : 남과 다른 재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주시는 기회가 다르고 때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엄마로서 우선순위를 아이들 키우는 데 뒀기 때문에 활동을 많이 못 했거든요. 음악적인 커리어에 있어 고민도 있었지만, 어차피 목표 지점은 그분을 만날 때고, 평가도 그분이 하시는 거라서 사람들의 눈으로 저와 제 삶을 재단하고 싶지 않았어요. 양성원 : 이 사람이 훨씬 더 순수한 음악가인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환경에 있었고, 스스로 결정한 건지 아닌지도 모르게 음악가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 ‘운명인가’라고 느껴지고요. 김은식 : 요즘 안셀름 그륀 신부님 책을 많이 읽는데, 수도자의 삶이 얼마나 그 사람을 성장시키고 영적으로 맑게 하는지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버님의 교육이 이 사람한테 많은 영향을 미친 건 확실해요. 몸에 대한 자기절제나 혹독한 훈련 과정을 통해 질적인 상승이 있다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양성원 : 가장 중요한 건 ‘이 직업이 심리적으로 어렵다’는 걸 준비하게 해주신 거예요. 그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특히 악기 연주는 오랜 기간 연마가 필요한 만큼 긴 호흡의 ‘passion’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클래식과 종교는 과거를 반복하면서도 지금에 맞게 새로워져야 하고, 또 그 안에서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 매개가 되는 만큼 사명감도 남다를 것이다. 김은식 : 고음악은 세련미나 완벽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굉장히 인간적이고 자연적으로 연주해요. 거침도 있고 한계가 있지만,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무척 자유로워지는 걸 느껴요. 유럽 수도원에서 공연할 때면 영적인 체험과 평안함이 와 닿거든요. 경쟁도 치열하고 바쁜 사회에서 생활하는 많은 분에게 이걸 전하고 싶어요. 양성원 : 종교와 음악은 다른 차원이지만 우리 몸과 영혼, 사회에 꼭 필요하죠. 이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수도자들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갈망하는 것처럼 연주자들도 작곡가들의 목소리를 갈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포츠 선수처럼 아주 높은 수준의 육체적 관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고요. 70~80대에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면 계속해도 돼요. 하지만 악기를 다루는 기량이 떨어지는데 감동이나 또 다른 게 없다면 은퇴해야죠.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아있는 두 연주자의 생각은 그들의 무대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각각 26일과 10월 2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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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17 오후 1:32:24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