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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2025-09-17
미국에서 벌어진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는 한인 종교 공동체에도 충격을 주었다. 특히 한국 목회자가 미국을 방문해 부흥회를 여는 일이 빈번한 개신교에서는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미국에 입국한 한인 목회자는 자신이 받은 비자의 목적에 맡게 활동해야 하며, 특히 사례비 등 금전 거래는 미국으로부터 단속과 구금·추방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극우 성향의 정치 인플루언서 찰리 커크의 총격 사망은 어떤가. 커크의 죽음을 계기로 미국은 ‘때려잡자 공산당’식으로 시민들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 모두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고향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한국인 노동자 구금과 찰리 커크 피살이라는,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사건은 우리가 아는 미국은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 특히 미국 가톨릭의 일부가 극우 정치와 위험한 동맹을 맺고 있다.

먼저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를 보자. 미국 남부 대형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수백 명이 이민단속국의 대규모 단속에 붙잡혀 구금되었다. 수갑과 발목쇠가 채워지고, 죄수처럼 취급되었다. 이민자를 환대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가르쳐 온 교회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 내 일부 극우 가톨릭 집단(MAGA Catholic)은 이런 단속을 오히려 ‘질서 유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들에게 이민자와 난민은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찰리 커크 총격 사건은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커크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극우적 언어를 퍼뜨린 대표적 인물이었고, 그의 죽음은 즉시 ‘정치적 암살’로 규정되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정치적 폭력이 종종 신앙의 언어와 뒤엉켜 나타난다는 데 있다. 미국 극우 진영은 자신들의 정책을 ‘하느님의 뜻’으로 포장하고, 대립을 ‘성전(聖戰)’처럼 묘사한다. 이런 담론 속에서 복음은 더 이상 사랑과 평화의 언어가 아니라, 전쟁의 깃발이 된다. 일부 가톨릭 전통주의자들 역시 이 흐름에 동조하며 극우 담론의 종교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가톨릭의 극우화는 여러 양상으로 나타난다. 낙태 반대 운동은 가톨릭의 생명존중 사상과 연결되지만, 극우 정치 속에서는 이 문제가 전체 정치 어젠다를 지배하는 ‘무기’가 된다. 낙태 반대는 외치면서도 총기 규제에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사형제와 무기 소지를 옹호한다. 교황청이 강조하는 난민 환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는 ‘좌파적’이라고 비난받는다. 레오 14세 교황을 포함해 역대 교황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그들은 전통적 교리 해석을 내세워 교도권과 맞서고, 정치적 극단주의와 손을 잡는다.

두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복음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취합하는 복음의 도구화다. 신앙은 인간을 해방하고 존엄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극우적 가톨릭 안에서 신앙은 권력의 장식물이 된다. “그리스도교 문명의 수호자”라는 수사는 매혹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타자를 배제하고 증오를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민자를 구금하고,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낙인찍는 행위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면, 그것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미국 가톨릭이 극우 정치의 손을 뿌리치고 인간 존엄과 평화의 복음을 말할 때, 지금의 미국을 우리가 알던 미국으로 돌려세우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지금 그래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09-17 오전 9:52:2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