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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특집-성지순례가 곧 삶입니다] (3) 성지순례 봉사 헌신하는 서동수 단장 2025-09-17

“성지순례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떠나는 길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순교자의 영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가 생생히 남아 있는 성지를 찾아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반성할 때, 좀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103위 순교 성인들의 믿음을 따르려는 성지순례단을 조직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서동수(마르코·73·수원교구 동탄반송동본당) 단장 겸 봉사자가 매월 정기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신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서 단장은 매월 첫째 토요일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기원 ‘희망의 순례’ 목적지 30곳, 매월 셋째 토요일에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에 등재된 전국 성지 167곳을 찾아 순례를 떠난다.



이것도 하느님의 부르심


서 단장은 1960년대 초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대교구 명수대본당(현 흑석동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신앙인으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성지순례에서 깊은 은총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나이 60이 다 돼서다. 2010년 58세 때 지인의 소개로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알게 되고 한국교회사연구동인회 회원이 되면서 교회사에 금세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주말이면 아내 박인원(로마나) 씨와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가까운 성지부터 순례하기 시작해 전국 성지를 찾아다니며 순교자들의 신앙에 매료됐다.


2016년에는 ‘행운’이 찾아왔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김영숙(안나) 수녀가 지도하는 ‘면형강학회 순례’에 아내와 매달 빠짐없이 참가해 전국 성지순례를 하게 된 것이다. 김 수녀가 정성스럽게 성지 해설을 하고 순교자들을 지극히 공경하는 모습을 보며 순교 영성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특별한 인연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구나’라는 감사한 마음이 들곤 한다.


면형강학회 순례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김영숙 수녀로부터 “4호차는 마르코 씨가 책임지시죠”라는 부탁을 받았다. 서 단장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순례자를 모으고, 해설 준비를 철저히 해 신자 40명의 순례를 인솔했다. 서 단장이 103위 순교 성인들의 신심을 따르는 순례단을 만드는 계기가 됐고, 지금까지도 순례단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지는 출발점이었다.


김 수녀는 “면형강학회 순례 때 열성적으로 참여하던 형제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저와 함께 순례하시던 분이 순례단 단장이 돼서 열매를 맺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 단장은 성지순례에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 끝내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결심하고, 순교자들의 삶과 나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성찰과 반성의 자세로 순례에 임한다면 우리 신앙이 깊어지고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 그리고 한국교회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면 가급적 많은 신자가 성지순례에 참여하고,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교황청에까지 전달돼야 한다는 것이 서 단장의 지론이다. 서 단장은 특히 “한국교회의 오랜 염원인 최양업 신부님 시복은 순례자들의 끊임없는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함께 순례하는 신자들에게 매번 당부하고 있다.



성지는 보존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서동수 단장은 한국교회 성지를 찾을 때마다 순교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깊은 신심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깊이 감동한다. 성지순례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서 단장과 순례에 동행하는 신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단장님 덕분에 성지순례의 참 의미를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순례하면 할수록 서 단장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자주 있다. 같은 성지도 다시 순례할 때면 이전보다 화려하게 변한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어느 성지 담당 사제가 “성지는 개발하는 곳이 아니라 보존하는 곳”이라고 했던 말을 깊이 음미하곤 한다.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시설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성지에 크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것을 볼 때면 “성지는 조용히 기도하며 묵상할 수 있는 곳, 순교자들과 영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는다.


서 단장이 더욱 아쉽게 여기는 것은 한편에서는 성지가 화려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교회 신앙의 뿌리인 공소들이 잊히고 심지어 허물어져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웠던 공소들,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공소들이 떠오를 때면 그리움이 몰려온다. “각 교구에 흩어져 있는 공소들을 있는 그대로 잘 보존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서 단장은 순례에 동행하는 신자들이 자신의 인솔을 충실히 따라 주고, 이제까지 사고 없이 무사히 순례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하느님의 사랑과 순교자들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성지순례에 나서는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요즘 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나누는 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재물을 나누는 것을 먼저 생각했지만, 시간과 재능, 희생을 나누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함께 나눠 순교자들을 공경한다는 마음을 올려 드리는 영성을 오늘의 한국교회 신자들이 배웠으면 합니다. 무릎이 몹시 아픈, 연세 많은 자매님이 빠짐없이 순례에 참여하는 모습도 희생을 나누는 영성이겠지요.”



[서동수 단장 추천 성지] 대전교구 공주 수리치골 성모성지
서동수 단장은 대전교구 공주 수리치골 성모성지를 순례할 때면 세상 속에 살며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체험을 한다. 멀리 보이는 드넓은 성모광장과 성모당, 십자가의 길 앞에 서면 이곳에 주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느낀다. 수리치골 성모성지는 박해시기 신자들이 숨어 살던 교우촌으로 ‘성모 성심회’라는 신심단체가 만들어진 뜻깊은 장소다. 한국교회에서 성모 신심이 시작된 곳으로 볼 수 있으며, 공주 지방 신앙 공동체 형성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역사의 현장이다. 1846년 병오박해 때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되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피신한 곳이 수리치골이었다. 서 단장은 수리치골 성모성지를 순례할 때, 특별히 성모칠고(聖母七苦)를 묵상하는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 성심회가 발족한 터로 걸어 올라가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또한 성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은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수리치골에 몸을 숨기고 조선교회의 보호를 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던 장면을 상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소중하지 않은 성지가 없지만 수리치골 성모성지는 언제나 다시 순례하고 싶은 성지로 서 단장의 가슴에 남아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가톨릭신문 2025-09-17 오전 9:32:34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