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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교부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하느님 자비를 기억하라! 2025-09-17

사막 교부들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는 ‘하느님 자비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적 한계와 나약함으로 인해 넘어졌을 때, 교만이라는 외줄을 타고 깊은 구렁을 건너가려 할 때, 하느님 자비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겸손하게 해준다. 성전에서 기도한 복음의 세리가 좋은 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고 하느님 자비를 구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13) 세리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그분께 겸손하게 자비를 구할 수 있었다. 겸손은 바로 자기 자신을 늘 죄인으로 생각하고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자세다.


하느님 자비를 구함


사막 교부들은 복음의 세리를 본받아 죄에 떨어졌을 때 즉시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했다. 압바 파울루스는 말했다. “진창 속에 목까지 빠져 있는 나는 하느님 앞에 울며 말합니다.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대(大)파울루스 2) 압바 루키우스는 새끼를 꼬면서 시편 51편을 암송했다. “나는 갈대를 물에 담그고 새끼를 꼬면서 하느님과 함께 앉습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하느님,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크신 선과 풍성한 자비로 제 죄에서 저를 구하소서.’”(루키우스 1)


또 위(僞)마카리우스 이렇게 말한다. “항구하고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면, 은총은 원수로 인한 모든 고뇌에서 그를 해방시킨다.”(모음집 2,56,7)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온갖 위험과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스스로 의인으로 자처하는 자는 결코 하느님 자비를 구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분 자비를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느님 자비는 겸손한 죄인에게만 미칠 것이다. 압바 모세는 말한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주님은 즉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모세 7)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갈수록, 그분 앞에 나아갈수록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느끼게 된다. 그때 자신이 하느님 자비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그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베푸신 그분의 호의와 자비는 언제나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는다.



하느님 자비를 기억함


언제가 한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그분은 젊은 나이에 갑자기 불치의 병을 얻었고, 받아들이기 힘든 이 상황에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지인이 자신에게 “별은 밤에 빛납니다”라고 했던 말을 듣고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지금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밤에 있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 사랑을 체험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긍정적으로 변하고 생활의 모습도 밝아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앙의 힘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똑같은 고통을 당하더라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고통은 지옥이 될 수도 있고, 하느님 자비와 사랑을 느끼고 그분 현존을 체험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 밝을 때는 빛나는 별을 볼 수 없다. 어두울 때 별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고, 그 별에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서서 방향을 잡고 별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나갈 때나 건강할 때, 삶에 어떤 도전도 없을 때는 우리와 늘 함께하는 하느님 자비를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하거나 시련과 곤경에 처할 때 우리의 간절함이 하느님을 찾게 하며, 그때 바로 우리는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자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늘 우리와 함께하는 하느님 자비를 기억해야 한다. 별은 밤에 빛나기 때문이다.


하느님 자비에 희망을 둠


사막 교부들은 항상 하느님 자비를 기억하고 그 자비에 희망을 두었다. 압바 포이멘은 말한다. “하느님은 손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들조차 현세에서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용기를 갖는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오.”(포이멘 94) 베네딕토가 제시하는 선행의 마지막 도구가 바로 “하느님 자비에 대해 결코 실망하지 말라”(규칙 4,74)는 것이다. 사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영적 여정은 우리 힘이 아닌 하느님 자비의 힘으로 가는 것이다. 그분의 자비가 없다면, 누구도 이 여정을 제대로 마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넘어짐을 통해 하느님 자비를 더 깊이 느끼고 확신하게 된다. 그 자비는 복음의 탕자와 같은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버지 하느님의 인내와 기다림, 관용과 용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느님 자비는 우리를 좌절에서 용기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동력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쉽게 넘어질 수도,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느님 자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하느님께 나아가게 될 것이다.


베트남 공산 치하에서 13년간 옥고를 치른 응우옌 반 투안 추기경은 이런 말을 했다. “과거 없는 성인 없고 미래 없는 죄인 없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일지라도 인간적 약점이나 허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의 인간적 한계를 안고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걷다 보면 무수한 잘못과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의 일치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자비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누구에게도 미래가 없을 수 없다. 이는 죄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늘 죄인이 내일은 의인이 될 수 있고, 오늘 의인이 내일은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죄와 허물을 딛고 미래로 나아갈 때 누구나 의인과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죄인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약하기에 죄를 짓게 되는데, 반복해서 죄를 짓다 보면 악한 습성이 몸에 배어 결국 악인이 되는 것이다. 나약함으로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죄인은 악인보다 회개와 구원의 길로 돌아서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악의가 없는 약한 사람의 여백은 하느님의 자비로 채워질 것이다.



글 _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 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주임)

[가톨릭신문 2025-09-17 오전 9:32:34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