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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는 생활 2025-09-17


번 주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경축 이동하여 지냅니다.

교회 전통으로, 순교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하느님 은총 없이는 어느 누구도 순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가장 거룩한 행동입니다. ‘순교자(라틴어:martyr)’는 ‘증거자’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친 많은 순교자들이 계십니다. 당시 천주교 박해 기록을 보면 순교자들은 무자비한 고문과 끔찍한 형벌을 당했습니다. 또 감옥 안은 너무 좁아 다리를 뻗을 수조차 없었고, 겨울은 너무도 춥고, 여름은 지독히 더웠습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이 멍석자리를 적셔 썩어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가혹한 굶주림으로 벼룩과 빈대와 이와 구더기까지 먹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깔고 누운 멍석을 뜯어먹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통에도 신앙 선조들은 망나니의 칼에 순교하기 전 감옥에서 목숨이 끊어져 옥사하게 되지 않을까 더욱 걱정하였습니다. 순교의 영광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103위 성인들뿐만 아니라 124위 복자들과 이름 모를 순교자들은 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신앙 선조들은 어떻게 이 무서운 형벌을 이겨내고 순교의 길을 걸으셨을까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지금의 안일한 우리 신앙을 반성하게 됩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에게 박해가 닥친다면 이겨낼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죄에 걸려 넘어져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내적 유혹의 형태로 끊임없이 박해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유혹에 쉽게 타협하고 굴복하고 맙니다. 유혹의 순간에 우리는 신앙 선조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믿음을 본받아 사랑이신 하느님만을 따르기로 다짐하며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벗들이여! 만일 이 험하고 비참한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의 가장 높으신 주인과 창조주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태어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하시며 마지막 편지를 시작하십니다. 이어서 순교하시기 전 “나는 하느님을 위해서, 이 민족 구원을 위해서, 참다운 조선의 번영을 위해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교자 성월. 우리나라의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어떻게 신앙을 증거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생활과 연결될 때, 그것이 바로 증거자의 삶이며 순교의 길입니다.

교회 전통에서 순교자들처럼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것을 ‘적색 순교’라고 표현합니다. 또 일생을 바쳐 신앙을 증언한 삶을 ‘백색 순교’, 일상생활을 주님께 봉헌하며 희생하는 삶을 ‘녹색 순교’라고 합니다. 오늘날을 ‘피 흘림 없는 순교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피를 흘려서 신앙을 증거해야 했던 초대 한국 교회의 잔혹했던 순교와 박해의 모습이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깊은 신앙으로 성숙한 영성생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모습은 오히려 초기 한국 교회의 박해 때보다 퇴화되고 퇴색된 신앙관과 가치관과 영성생활이 우려됩니다.

순교 성인들의 피로 다져진 우리 교회입니다.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되새기며,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받아야 할 고난과 아픔이 있더라도 훗날의 더 큰 영광을 믿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가시적 박해가 없는 오늘날의 순교자적 생활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09-17 오전 9:32:2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