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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 2025-08-20
얀 미커 작, ‘덕의 좁은 길과 악의 넓은 길’,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그리스도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는 데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합니다.

많은 종교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처럼 가르치지만 종교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가 마음대로 구원을 주거나 말거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이지, 하느님께서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 갇혀 계시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루카 13,25-27)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일지라도 하느님 뜻에 맞게 살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천주교 신자가 되고, 성경을 읽고, 강론을 듣고, 성체를 모신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지만,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작은 사람, 몸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사제인 저에게도 오늘 예수님 말씀은 깊은 성찰을 하게 합니다. 사제라는 직책만으로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 “주님,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가르치고,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거행하지 않았습니까? 문 좀 열어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온갖 허물과 수많은 죄로 하느님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자비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구원이 보장되거나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주님 가르침에 따라 성실하게 온 힘을 다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돈과 재물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학식과 재능과 천주교 신자라는 이름과 어느 정도의 선행과 자선으로 치장하며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구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자만하기도 합니다. ‘내가 신부인데?, 내가 천주교 신자인데?, 내가 사회에서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데?, 내가 자선을 이만큼이나 베풀었는데?’하는 생각으로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는 어렵습니다.

‘쉽고 편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세상의 생각과 다르게, ‘어렵고 힘들어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면 항상 어려운 길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은 구원을 위한 선택의 기준을 어떻게 삼고 있습니까?


 
[가톨릭평화신문 2025-08-20 오후 2:52:1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