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금주의 성인] 성 루도비코 (8월 25일) | 2025-08-20 |
---|---|
![]() 루도비코 성인은 프랑스 왕 루이 8세의 아들로, 1214년 푸아시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파리 근교에 성 클라라수도회 롱샹 수도원을 설립한 이사벨라 복녀가 루도비코의 누이입니다. 1226년 루이 8세가 숨졌을 때 루도비코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기에, 그의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루도비코의 어머니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의 티보 4세를 비롯해 야심 많은 귀족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했습니다. 루도비코는 1234년 왕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해 5월에는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와 혼인해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훌륭하고 경건하게 교육했습니다. 루도비코의 어머니 블랑쉬는 고문관으로서 아들을 적극 도왔습니다. 그는 1242~1243년에 일어난 남프랑스 반란을 진압했고, 잉글랜드의 헨리 3세를 타유부르 전투에서 격퇴, 프랑스 서부의 푸아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영향력을 점점 확대했습니다. 루도비코는 신심이 깊어 수도 생활을 꿈꿨습니다. 이에 스스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설립한 작은형제회의 제3회원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성 후에 작은형제회 제3회의 수호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루도비코는 정의로운 정치를 펼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귀족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해 성왕(聖王)으로 불렸습니다. 루도비코는 성인품에 오른 유일한 프랑스의 왕입니다. 그의 통치 기간에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습니다. 「로마 순교록」에서 루도비코는 오늘날 튀니지 수도인 튀니스 근처에서 전염병으로 선종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는 1297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선종 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실 문장인 백합을 들고 있거나 예루살렘 성지에서 가져온 그리스도의 성유물인 가시면류관을 들거나 머리에 쓰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그려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쓰셨던 가시관은 루도비코가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 석방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자, 동로마제국 황제가 감사의 뜻으로 준 선물입니다. 신심이 깊었던 루도비코는 수천 명의 신자와 함께 맨발로 먼 길까지 마중 나와 손수 가시관을 모시고 행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성십자가 보목 등을 모시기 위해 1248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파리에 생트샤펠 왕실 성당을 건립했습니다. |
|
[가톨릭평화신문 2025-08-20 오후 12:52:19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