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최양업관 주차장에 주차돼있는 유경촌 주교의 프라이드 차량.
26년 동안 유경촌 주교의 발이 되어준 차량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은색 KIA 1세대 프라이드. 단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유 주교는 이 차를 몰고 다니며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주었다. 지난 15일 선종한 유 주교를 기억하는 이들은 오래된 이 차를 보며 주교의 검소함과 늘 남을 먼저 생각하던 마음을 떠올리며 추모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 차량인 프라이드 내부.
유 주교가 KIA 1세대 프라이드를 인수한 것은 1999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다. 그는 26년 넘게 전국을 누비며 약 10만 6000km를 달렸다. 지구 한 바퀴가 약 4만 75km이므로, 대략 지구 두 바퀴 반에 해당하는 거리다. 차량이 단종된 지 20년 이상 지났음에도 유 주교는 이 차량을 고집했다. 주변에서 차를 바꿔주겠다고 한 이도 여럿 있었다.
독일 유학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은 검소하고 가난한 삶을 지향하면서 항상 남을 먼저 생각했다. 독일에서 함께 유학 생활을 한 서울대교구 허영엽(영성심리상담원장) 신부는 “독일 유학 시절에 500마르크(현재 한화 50만 원가량)를 주고 헌차를 구매해 타고 다녔다”며 “저를 태우고 근교에 나가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윤상석(라파엘)씨가 차량을 정비하고 있다.
윤상석(라파엘)씨는 10년 넘게 유 주교의 오래된 차량 부품을 구해 정비해준 차량 정비사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윤씨는 “처음 정비 의뢰를 받았을 때 차량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구할 수 있을지 몰라 한번 맡겨달라고 했다”며 “한국에서는 이미 부품이 단종됐기 때문에 수소문해 일주일 만에 물건을 구해 차량을 수리했다”고 회고했다.
윤상석(라파엘)씨 카센터 사무실 한 쪽 벽면에 유경촌 주교로부터 받은 임명장 등이 걸려 있다.
그는 이어 “주교님께서 워낙 검소하셔서 오래된 차량에 애착을 가지셨고, 이후에도 차량 수리가 필요할 때 필리핀에서 부품을 구해 수리해 드리곤 했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선교사로도 봉사하고 있다.
유 주교는 많은 이에게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유 주교의 프라이드 차량이 주차된 최양업관 직원 박명숙(마리아)씨는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 때 크리스마스 트리를 정리하는데 주교님이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데’라고 하셔서 ‘내년에 도와주세요’라고 답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투병 중에도) 항상 ‘제가 먼저 도와줘야 하는데’라는 말씀이 입에 밸 만큼 남을 생각하신 분”이라고 전했다. 최양업관은 교구 특수 사목 사제들이 생활하는 숙소로, 유 주교는 최근 2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최양업관의 직원 최윤옥(루치아)씨도 “주교님께서 단 한 번도 개인 빨래를 내놓으신 적이 없다”며 “청소를 하기 위해 주교님 방을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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