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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이 곁에서 사랑으로 빛난 목자, 이제 주님 품으로 2025-08-20
2018년 가을걷이 감사 미사 및 도ㆍ농 한마당잔치에서 김장 김치를 맛보고 있는 유경촌 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유경촌 주교가 2023년 10월 29일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사제단과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미사를 집전한 뒤, 유가족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가 2014년 6월 24일 새로 단장한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원목실 축복 미사를 주례한 뒤, 환자에게 안수하고 있다.


1992년 사제수품 이후 사회사목·환경에 관심
신학생 시절부터 어렵고 힘든 이 지키려 노력
서울대교구 규정집 편찬으로 교구 행정 발전



늘 겸손하고 소박한 성품을 지닌 목자. 가난하고 약한 이를 향해 깊은 사랑을 품은 사제. 일찍이 창조질서와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노동·환경·농민·장애인 등 이웃을 두루 챙겼던 주교. 1992년 1월 30일 사제품을 받고 33년간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유경촌(티모테오) 주교가 보여준 면모다. 그 됨됨이는 자신을 주교로 임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닮았다. 주교로서 10년간 두 교구장(염수정 추기경·정순택 대주교)을 보필한 유 주교는 수많은 신자의 기도에도 암 투병 끝에 15일 지상 여정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는 신학생 시절부터 가난하게 살기를 원했고, 어렵고 힘든 이들 곁을 지키고자 했으며,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빨래는 물론 방 청소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했다. 주교가 된 후에도 이런 모습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철저히 그렇게 살고자 했다.”(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

“2014년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화문 옥외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할 때, 유경촌 주교님께서 농성장을 찾아오셨습니다. 크레인을 타고 직접 30m 상공에 올라 노동자를 만나고 오셨는데 주교님은 평소 높은 곳을 힘들어하셔서 크레인을 타고 오르는 동안 난간을 꼭 잡고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셨음에도 직접 현장을 방문해주셨습니다.”(정수용 신부, 당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고 유경촌 주교의 면모와 성품이 드러나는 추억과 일화들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이자 푸피(Puppi) 명의 주교로 임명된 2013년 12월 30일. 유 주교는 첫 인터뷰에서 ‘어떤 주교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주님 말씀에 따라 솔선수범하며, 교구장님의 좋은 협력자로서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답했다.

 
2016년 12월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부천성모병원에서 마련한 '산타가 되어 주세요' 행사에서 유경촌 주교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제공


교회와 사회 잇는 데 헌신한 주교

유 주교가 2014년 2월 5일 주교품을 받은 뒤 처음으로 찾은 곳은 빈민사목위원회 삼양동선교본당이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줄곧 사회사목담당 겸 동서울담당 교구장대리를 맡아 교구 사목에 헌신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한마음한몸운동본부·한국중독연구재단(KARF)·서울가톨릭청소년회·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등 그가 이사장을 맡은 굵직한 단체와 기관들의 면면은 모두 교회와 사회를 잇는 중요한 사회사목 분야였다.

유 주교는 ‘정의·평화·창조보전 활동’(JPIC)으로 사회사목에 헌신했다.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손수 배달하고, ‘산타클로스’가 돼 투병 중인 어린이 희소병 환자에게 선물을 직접 나눠줬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연대를 표하는 일선에도 유 주교가 있었다.

명동대성당 앞 노숙인을 볼 때마다 챙겼고, 해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서울역 등지 노숙인을 찾아갈 때 늘 동행한 유 주교는 한 노숙인에게 선뜻 자신의 패딩을 벗어주고 온 일도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이사장으로서 정기·비정기 후원과 봉사활동, 명동밥집 배식 봉사를 지속해왔다. 사제 숙소 홍병철관에서도 개인 화장실이 없는 방에서 살았다. 봉사하느라 밤늦게 돌아올 때면 조용히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2017년 4월 서울대교구 성유 축성미사에서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하고 있는 유경촌 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2014년 2월 5일 주교 서품식에서 같이 주교품을 받은 정순택 대주교(왼쪽)와 정진석 추기경과 함께. 염수정 추기경과 이한택 주교 이후 12년 만의 '쌍둥이 주교' 탄생에 온 교구민이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타고난 사랑의 소유자

유 주교는 1962년 9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 유탁(베드로)·박금순(루치아)씨 사이 4남 2녀 중 막내였다. 방송연출가 고 유길촌(레오)씨가 큰형, 유인촌(토마스 아퀴나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셋째 형이다.

유 주교는 중학교 1학년인 1975년 서대문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성당에서 여러 권 빌려 읽은 성인전은 그에게 ‘복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줬다. 중학생 복사가 있는 주교좌 명동대성당까지 가서 전례 봉사를 했다.

복사로 활동하면서 사제의 꿈을 키운 그는 3년 뒤인 1978년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에 입학했다. 1981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로 진학했다. 성품이 바르고 성적이 우수한 데다 교우관계가 좋았기에 모두가 반겼다.

주교 사목 표어 역시 그의 이웃 사랑 정신을 드러낸다.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요한 13,14)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당부로, 겸손과 사랑·희생을 통해 진심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사랑과 따뜻함이 넘치는 사목자였지만,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했다.



창조질서에 주목한 윤리신학자

유 주교는 독일에서 10년 동안 공부한 윤리신학자다. 처음 유학을 떠난 때는 대신학교 4학년 과정에 군 복무까지 마친 1988년.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윤리신학을 전공했다.

1992년 사제가 된 이후 1998년 마침내 프랑크푸르트 상트 게오르겐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땄다. 논문 주제는 ‘공의회적 과정에서의 창조질서 보전 문제’였다. 당시 유럽은 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을 주제로 교회 일치 운동이 활발했다. 한국에선 산업화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가 심각했다. 유 주교는 ‘창조질서 보전’에 주목,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유학생 유경촌’의 일상은 철저한 근검절약이었다. 그 모습 그대로 30년이 넘는 사제생활 내내 소탈하게 살았다. 주교 임명 당시 어느 동기 사제는 “(주교님이) 아직도 속옷을 손수 꿰매 입고 20년이 된 소형차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빨래와 방 청소를 남에게 맡긴 적도 없다.

1999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유 주교는 목5동본당 보좌로 첫 사목을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대신학교 교수로 발령, 약 10년간 교단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게 된다. 겸손한 그는 신년 하례 때 신학생들에게 세배를 받지 않으려 성당 제단에 안 올라가기도 했다.

교수 시절인 2004년 유 주교는 실천을 강조한 사순 묵상집 「내가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을 처음 펴냈다. 윤리신학자로서 주교가 된 뒤인 2014년 펴낸 「21세기 신앙인에게」는 개인 신앙부터 생태 환경까지 여러 분야를 조명한 가톨릭 사회 교리 해설서다. 2022년 펴낸 「우리는 주님의 생태 사도입니다」는 생태 위기 시대 가톨릭 사회 교리를 다뤘다. 유 주교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와도 상통한다.

2008~2013년 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을 지내는 동안 유 주교는 「서울대교구 규정집」을 펴냈다. 교구 설정 180주년을 맞아 추진한 작업으로, 교구 행정을 한 단계 발전시킨 업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어린이들과 어울리는 유경촌 주교. 2017년 5월 16일 서울가톨릭어린이집협의회 주관으로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가톨릭 어린이 잔치 장면이다.


마음을 움직이며 소통한 목자

유 주교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잘했다. ‘자모신 마리아’(가톨릭 성가 238번)는 유 주교의 애창곡이다. 그 노래가 한 번은 그를 울렸다. 2014년 2월 5일 주교 서품식에서였다. 반년도 채 안 돼 주임 신부를 떠나보내는 명일동본당 신자들이 이 노래를 합창했다. 새 목자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축하 잔치가 잠시 울음바다가 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2016년 5월 26일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청년들을 위한 고해성사와 미사가 있던 날. 유 주교는 청춘들을 향해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그해 여름, 유 주교는 폴란드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WYD)에서 젊은이들에게 이 노래를 한 번 더 불러줬다. 주교가 부르는 위로의 노래는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됐다. 유 주교는 그렇게 모든 세대와 마음으로 함께했다. 노랫말대로 그는 모두의 지나간 아픔을 안아줬고, 후회 없이 사랑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5-08-20 오전 11:12:2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