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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하는 훈육 2025-08-19



얼마 전 라디오를 통해 「적절한 좌절」이란 책 소개를 들은 적이 있다. 요지는 이러했다. ‘애착 과잉’, 과도한 보살핌으로 인해,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마땅히 거쳐야 할 ‘적절한 좌절’의 단계를 거치지 못해 정서적 비만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나친 애착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좌절과 실패, 상실을 겪음으로써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며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사소한 갈등에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의 요지에 공감이 가면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 삶에 좌절이 없을 수 없다. 부모 입장에서 좌절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얼마나 큰 괴로움일까. 그런데 좌절하지 않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좌절을 딛고 나갈 준비를 못 하도록 막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좌절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넘어질 때 당장은 아프지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응원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훈육 방식은 어떠할까? 성경을 읽다 보면 하느님께서는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아는 분이심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애착 과잉으로 자녀를 키우지 않으신다. 그보다는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자녀들이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도록 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늘 승승장구하는 완전무결한 영웅들이 아닌, 삶에서 닥치는 수많은 시련과 위기를 통해 쓰러지고 가슴이 찢긴,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 길을 나선 이들이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서를 통해 말씀하신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히브 12,5-6) 또한 시련을 하느님의 훈육으로 여기며 견뎌내라고 권고하신다.

잠언도 이렇게 전한다.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주저하지 마라. 매로 때려도 죽지는 않는다. 아이를 매로 때리는 것은 그의 목숨을 저승에서 구해 내는 일이다.”(잠언 23,13-14) 물론 아이를 폭력으로 대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자녀를 엄하게 훈육하는 것은 필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보다, 세상에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음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고 할 때, “그래, 넌 열심히 공부해라. 기도는 내가 할 테니”라고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럴 때에는 어른의 말씀을 따르자. 오랜 지혜를 갖고 있는 어른인 교회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아이가 올바른 양심을 갖추도록,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도록, 세상에서 닥치는 시련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도록 신앙으로 훈육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교회가 의무로 지우는 것은 단순한 짐이 아닌, 오랜 경험과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안에는 하느님의 뜻과 지혜가 담겨 있다. 젊은 날은 한때다. 인내로 그 시절을 감내하며 지낼 때, 인간답게 성장할 수 있다. 아이가 불만을 표출할 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되,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와 용기를 줄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우리를 훈육하셨다.



한민택 신부
[가톨릭평화신문 2025-08-19 오후 5:52:15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