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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유리알] ‘여러분의 본당신부’가… 2025-08-12

 

하느님의 벗 테오필로스 님.

 

 

한국은 무척이나 덥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무더위가 불행은 아니지만 불편하고, 그 때문에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날씨에 임병헌 베드로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으로 모금을 다녀왔습니다. 올 8월에 은퇴하시는 임 신부님을 저는 교수와 제자로 신학교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사실 한 사제가 마지막 본당을 떠나게 될 때, 교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모금과 같은 일들은 줄입니다만, 이번엔 간절히 청을 드렸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표현까지 썼지요. “저희 본당은 모금보다 신부님의 위로가 더 필요합니다.”

 

 

테오필로스 님, 절실하면 모든 게 통하는 걸까요? 바라고 원하는 것을 아는 건 행운입니다. 여전히 저는 ‘길’을 찾고 있었고, 흔들리지 않는 사목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심 위로도 바랐던 모양입니다. 동료 신부들 사이에서 임 신부님은, 은퇴하시기에 아까운 분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교우와 사제들에게 더 가까이 계시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지요.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신학과 1학년 시절,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비구원의 상황이고, 교회는 구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성인들처럼 잘 살고 싶어 앞만 보고 달렸던 제가,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세상은 비구원의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에 ‘무관심’해 보였습니다. 교회는 거침없이 변하는 세상 앞에서 무력했습니다. 

 

 

테오필로스 님. 저는 그래서 비결을 찾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쯤 찾아온 가을 어느 날 신학교 운동장에서, 장교처럼 선글라스를 쓴 분이 신학생들의 축구 경기

 

 

를 보고 계셨습니다. 친구들은 신학원론 과목의 임 신부님이라고 했지요. 충청도 억양이 살짝 섞인 큰 음성은 수업 시간에 졸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선지 강의 시간에 들었던 그리스어 ‘Crisis’(크리시스)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지요. ‘위기’를 뜻하는 이 단어는, ‘위기의 상황’이 때때로 결단의 순간이며,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수업을 들으니 ‘교회도 세상 앞에서 이제 당당히 희망을 외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지요.


 

 

테오필로스 님. 저는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분처럼 즐거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신부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니, 은퇴하시기 전에 그 비결을 꼭 알아볼 작정이었습니다. 모금을 위해 성당에 도착한 시간이 토요일 오후 4시경. 어쩌면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광화문을 방문하셨을 때 무전기를 들고 교구 행사를 뒤에서 지휘하시던 사무처장 시절의 모습을 은근히 저는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침, 주일학교 미사가 끝나 있었습니다. 꼬마들은 성당 문을 나오며 신부님 품에 있는 사탕 통에 손을 넣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사춘기 친구들도 한순간 강아지처럼 응석을 부렸지요. 테오필로스 님도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이런 행동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럴 수 있을까요? 저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신부님은 주일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이라는 주보 편지를 게재하셨습니다. 말씀으로는 당신이 주일미사 때, 모든 교우와 만날 수 없어서 본당 행사를 소개하고 안부를 물으신 거라고 했지만, 사목자의 연애편지 같은 글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이 교우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편지 끝에는 ‘여러분의 본당신부가’라고 매번 쓰셨지요. 

 

 

왜 그렇게 쓰셨는지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수줍은 미소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결같이 가르쳤습니다. 사목자는 교우분들을 위해서 존재하려고 온 거라고. 제가 오기 전부터 여기 교우들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 여정을 계속 걷고 있으셨지요. 그저 이분들과 함께 이 순간을 걸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본당에 있는 신부’라는 표현을 했고, 동시에 ‘여러분의 목자’라는 뜻에서 글 끄트머리에 그런 표현을 쓰게 된 것입니다.”  

 

 

테오필로스 님, 저는 보물의 문 앞에 선 모험가처럼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결을 쥘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신부님은 본당에 계시면서, 자신만의 사목 철학 내지는 구체적인 기준들이 있으신가요? 이를테면 신자들 앞에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든가, 입관식에 꼭 참석한다든가.” 

 

 

그러나 임 신부님은 오히려 평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저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려고 했지요. 세상살이는 참 바빠요. 그래서 만나는 이들에게 ‘너 얼마나 지치냐? 본당에 와서 주님 곁에서 그냥 쉬어라’ 합니다. 그래서 졸든지, 딴생각을 하든지, 상상을 하든지 주님 곁에 그대로 머물게 합니다. 그럼 그러다가 마음 안에 한두 마디 들리면, 그렇게 살면 되고요. ‘그동안 고생했지? 여기서 숨도 고르고 쉬었으면 또 한 주간 가서 고생해라’라는 마음으로 말합니다. ‘파견과 부르심 그리고 머무름 또 파견’이 반복되는 곳이 바로 성당입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동안 머무는데 사목자가 화를 내면 안 되지요.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주려고 했습니다. ‘버릇을 고쳐준다?’ 다양성의 시대에서 사목자가 모든 것을 소유한 양 가르치는 건 불가능합니다. 삶의 결정은 누가 해야 하나요? 본인들이 하게 하는 거지요. 택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이런 삶으로의 초대 속에서 기운 내 다시 살아보자고, 저는 늘 말해 왔습니다.”


 

 

일요일 마지막 모금 미사가 끝나자, 청년들은 신부님을 모시고 성모상 앞으로 가서 여러 자세로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은퇴를 앞둔 분과의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겠지요. 그 몸짓들은 한마디로 ‘자꾸 더 보고 싶어질 것 같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공경하올 테오필로스 님. 임병헌 베드로 신부님을 통해서 제가 찾았던 사목의 보물은, 손자병법 같은 비결이 아니라 이미 배운 주님의 그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시선과 손길 그리고 따뜻한 숨결까지. 

 

 

이제 이 사목자, ‘여러분의 본당신부’는 은퇴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들 곁에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 (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

 

[가톨릭신문 2025-08-12 오전 9:52: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