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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정당한 전쟁은 없다” 2025-07-02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불씨로 세계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중에 일부 전쟁을 옹호하는 이들은 성경의 말씀이나 종교적인 언급을 통해 전쟁이 마치 종교적으로 정당한 듯 꾸미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교적으로 정당한 전쟁도 있을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종교로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이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월 12일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방문해 자신이 적은 쪽지를 벽 틈새에 끼워 넣었다. 통곡의 벽을 성스럽게 여기는 유다인들은 이 벽 틈새에 바람을 적은 쪽지를 끼워 넣으면 하느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여긴다. 네타냐후 총리가 쪽지에 적은 문장은 “보라, 백성이 큰 사자처럼 일어설 것이다”였다. 이 문장은 민수기 23장 24절 “보라, 암사자처럼 일어나고 수사자처럼 일어서는 백성을. 짐승을 잡아먹지 않고서는, 잡은 짐승의 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눕지 않는다”에서 따온 것이다.


다음날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과 핵심 군지휘관을 공습했다. 작전의 이름은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였다. 네타냐후 총리의 쪽지 내용이 반영된 작전명이었다. 성경 구절에서 따온 작전명은 민간인 피해까지 일으킨 대대적인 공습에 종교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스라엘이 작전명을 성경에서 따온 일이 처음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종종 성경으로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곤 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시리아에서 군사 작전을 펼치면서 ‘바산 화살 작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민수기와 신명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산 임금 옥의 왕국을 정복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산은 오늘날 이스라엘과 시리아 국경의 골란고원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미국의 이란 공습에 관련해 ‘하느님’을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21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직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밝혔고, 이어 휴전 합의 중인 24일에는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이란, 중동, 미국, 전 세계를 축복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종교로 전쟁을 정당화한 시도라는 비판을 낳았다.



‘정당한 전쟁’은 없다


종교로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침략 행위인 전쟁은 결코 정당할 수 없다.


모든 전쟁은 십계명 중 다섯째 계명,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정면으로 반한다. 교회는 “도시 전체나 광범위한 주민들에게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모든 전쟁 행위는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이며 “이는 확고히 또 단호히 단죄 받아야 한다”고 전쟁을 강력히 반대한다.(「사목헌장」 80항) “침략 전쟁은 본질적으로 비도덕적”(「간추린 사회 교리」 500항)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성경이나 ‘하느님’에서 명분을 찾는다 해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다.


교회는 나아가 “어떠한 전쟁이든 완전히 금지할 수 있는 시대를 온 힘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사목헌장」 82항) 특히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면서 군비 증강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개인들과 국가들 사이에 만연한 불의와, 경제 사회 분야의 지나친 불공정과 불평등, 시기, 불신과 교만은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하며 전쟁의 원인이 된다”며 전쟁 억제를 위한 정의 실현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15항, 2317항)


그렇기 때문에 역대 교황들은 끊임없이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호소해 왔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 전날인 4월 20일 ‘로마와 온 세상에’(Urbi et Orbi) 보내는 부활 메시지를 통해 강력하게 평화를 요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 속에서 우리는 죽음이 활개 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느냐”고 개탄하면서 교전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선언하고, 인질들을 석방하며, 굶주림 속에서 평화로운 미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길” 당부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군비 축소 없이는 참된 평화가 꽃 필 수 없다”고 역설했다.


레오 14세 교황 역시 6월 14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군사 충돌 확대를 우려하며, “그 누구도 타인의 존재에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되고, 모든 이의 존엄성과 안전을 보장하는 해결책을 증진하고 화해의 길을 찾으며 평화의 사명을 지키는 것은 모든 나라의 의무”라고 전하며 전쟁의 중단과 중동 지역의 평화를 호소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전쟁’이란


‘정당한 전쟁’이 없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전쟁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성경, 특히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했던 일화들이 등장한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고, 전쟁을 종교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이 전쟁들을 두고 ‘윤리적 정당성’을 따지기는 어렵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이라는 보편적인 체험에서 출발해, 모든 인류의 구원이 달려있는 영적인 전쟁의 본질적 측면을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율법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것처럼, 전쟁에 관한 가르침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고 말했듯이, 우리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수행해야 할 진정한 전쟁은 지상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전쟁은 사탄과 악에 대항하는 영적인 전쟁이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박사는 “일부 유다교도들은 구약성경을 민족주의적이고 실정법적이고 율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 해석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해석이 아니다”라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혈연 집단에게 특정 땅을 주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백성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신다는 종말론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5-07-02 오후 12:12:1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