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

  • 전례성사
  • 가톨릭성미술
  • 가톨릭성인
  • 성당/성지
  • 일반갤러리
  • gallery1898

알림

0

  •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신앙에세이] 작은 성모상에서 찾은 신앙의 큰 가치 2025-07-01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성상 복원작업에 매진하던 어느 날, 인천 송도에서 한 통의 전화가 결려왔다.


할머니가 30여 년 동안 애지중지해 온 낡은 성모상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새 성모상을 사드리려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할머니 마음에 드는 성모상을 찾지 못했다. 결국 실망과 슬픔 속에 복원이 가능할지 물어왔다.


새로 만든 어떤 성모상도 30여 년간 울고 웃고 기도하던 신앙생활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낡은 성모상을 대체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단순한 성상이 아닌 30여 년의 추억을 잃어버리는 상실감을 못 견뎌 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손바닥보다 조금 큰, 손 한 뼘 반쯤 되는 작은 성모상을 복원해 본 경험이 없기에 망설여졌다. 성상은 두 동강으로 부러져 있었고, 오래된 석고상이어서 부식도 심했다. 채색이 제대로 될지조차 의문이었다.


최소한 보름 이상 작업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정상적인 비용을 숨기고 몇만 원이면 된다고 하며 복원을 맡기로 했다. 두 동강 난 몸부터 조립을 하자니 단순히 접착제로 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발밑에서 구멍을 뚫고 금이 간 부위까지 심봉을 삽입해 구조를 보강했다.


채색도 쉽지 않았다. 숙련자가 단숨에 휘갈기듯 그려낸 눈매는 아무리 능숙하게 그려도, 매일 그 성상을 바라보며 기도해 온 할머니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확대해 출력하고, 그 위에 여러 번 그려보며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려 애썼다.


아크릴 물감을 붓으로 직접 바르려니 채색 작업만 일주일이 걸렸다. 완성해서 보내드리자, 할머니는 좋아하시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셨다.


작은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대단한 작업도 아니고 절실한 부탁에 마지못해 한 작업인데, 지금까지 한 모든 작업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가슴이 꽉 차는 감정을 느낀 것이다.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복원이란 일은 단순히 성상의 가치를 보존하는 게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과 삶의 작은 역사를 지켜주는 일이라는 것을.


신앙생활이란, 내 자신의 신앙의 삶 뿐만 아닌 나의 역사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전달하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큰 작업도 미뤄놓고 이 작은 작업을 맡아 소비한 시간과 노력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제 길을 걷다 성모상을 발견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저 성모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신앙의 역사가 깃들어 있을까 하고 말이다.



글 _ 고승용 (루카) 성미술 작가

[가톨릭신문 2025-07-01 오후 5:52:1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