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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생각과 가슴의 욕구가 손 맞잡을 때 ‘아하’ 기도 시작 2025-06-18
무언가에 홀린 듯 반복되던 행동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마음 한구석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출근길 직장인들 모습. 뉴시스

한 젊은이가 흔히 말하는 ‘꿈의 직장’에 어렵게 취직했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그는 매일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피곤에 지쳐 귀가하던 저녁, 집 앞 골목의 제과점 앞을 지날 때마다 고소한 빵 냄새에 이끌려 무심코 가게에 들어가 빵을 사오곤 한 것이다. 그 일은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책상 위에 쌓여있던 빵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봉지도 뜯지 않은 채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그 순간 마치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배가 고파서 빵을 산 게 아니었구나.’ 그제야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무의식 중에 빵을 사와 책상 위에 던져놓는 일을 계속 반복해왔던 것이다. ‘왜? 도대체 왜 그랬을까?’ 충격에 멈춰 선 그는 조용히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한동안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마음속 진실이 떠올랐다. ‘아하, 내가 너무 지쳐 있었구나. 마음이 외롭고 힘들었구나.’

그 강한 욕구는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육체가 아닌 정서적 허기였다. 그리고 그 허기를 알아차리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을 때, 더 이상 빵을 사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아하!’의 순간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반복되던 행동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는 그때다. 단순한 생각이나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이 함께 마주하는 순간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때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먼저 반응하고, 이어 이성과 통찰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그 신호를 받아들이면서 두 영역이 소통한다고 설명한다. 가슴이 먼저 느낀 것을 머리가 비로소 이해하는 순간. 설명할 수 없던 허기·공허·외로움 같은 감정들이 반복되다가 마침내 하나의 의미로 통합되는 시간이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런 체험은 작은 각성이자 깨달음이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마음 한구석과 잠시 마주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자비와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내가 외로웠구나.’ ‘내가 힘들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품고 연민의 마음을 건넬 때, 감정과 이성이 만나 ‘아하!’라는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 일어난다.

이 젊은이의 이야기는 단지 ‘빵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마음의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들고, 야식을 찾고, 쇼핑을 하거나 SNS의 ‘좋아요’를 확인하는 우리 손길에도 어쩌면 같은 허기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 손끝에서 문득 깨닫는다. ‘내가 정말 원한 건 이게 아니었구나.’ 그때 감정의 뇌와 이성의 뇌가 조용히 공명하며 마음과 인식이 맞닿는다. 그리고 마음의 허기 속에 숨어 있던 ‘진짜 나’가 조용히 깨어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장-다비드 나지오(Jean-David Nasio)는 이렇게 말했다.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늘 행동으로 되풀이된다. 의미를 찾아내야 그 행동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켜는 스마트폰, 멍하니 들여다보는 텔레비전 화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의 결제 버튼을 누른 뒤 문득 정신이 드는 순간들, 반복되는 그 행동들 이면에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의 허기가 숨어 있다.

결국 습관을 바꾼다는 건 단지 의지로 행동을 끊어내는 일이 아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행동이 내 마음의 어떤 말을 대신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의식의 빛이 마음의 어두운 곳에 닿을 때, 반복되는 행동은 서서히 힘을 잃는다. 머리에서 쏟아지던 한탄은 줄어들고,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아하’가 조금씩 늘어나는 그때, 되풀이되던 행동은 멈추기 시작하고 다른 선택을 할 힘이 자라난다.

한 해의 반환점을 돌아서는 6월.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의 머리와 가슴은 만나고 있는가? 그 만남 속에서 나는 ‘아하!’의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가?”


<영성이 묻는 안부>

‘왜 그런지도 몰랐던’ 반복, 그 의미를 알아차리는 순간, 행동은 서서히 힘을 잃지요. 그래서 중독처럼 달라붙는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 행동이 마음에서 어떤 말을 대신하고 있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변화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니까요.

어느 날 한 청년이 제게 물었습니다. “친구들과 온종일 놀다 왔는데 더 공허하고 외롭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메시지를 주고받고, 밤늦도록 화면을 들여다봐도, 그 행동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지 못하면 마음은 더 허전해집니다. 허기진 마음이 시작한 행동이, 도리어 마음을 더 허기지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그쳐도 고단한 일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머릿속의 생각과 가슴의 욕구가 손을 맞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 의식의 빛이 닿으면 문득 두 손을 모으게 되지요. ‘아하’ 기도는 어쩌면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06-18 오전 9:32:3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