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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환 평화칼럼] 하느님의 뜻 | 2025-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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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내 인생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에 올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믿음 덕분이었다. 하느님의 목소리보다 의사의 조언을 따랐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14남매 중 일곱째, 어머니는 16남매 중 여덟째. 두 분이 결혼해 자녀를 몇 명 낳을지는 따로 계획하진 않았다. 그저 서로 사랑했고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셨다. 하지만 그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첫째 누나는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 몇 달 동안 생사를 오갔다.(22살에 결국 심장 수술 중 하늘나라로 떠났다.) 둘째도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고, 셋째는 태어난 지 10일 만에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몇 달 후, 둘째마저 두 살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은 4개월 사이에 두 자녀를 떠나 보냈다. 그때는 의사들이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라고 권했다. 사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많은 분이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왜 아픈 아이를 이 세상에 데려오려고 하나? 넷째도 아프면 책임질 수 있나?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가? 부모님은 의사의 말과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무시하고 하느님께 맡겼다. 생명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고 보내실 때 보내주시고 데려가실 때 데려가신다는 것을 믿었다. 하느님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자녀를 떠나 보낼 때마다 많이 우셨다. 이해도 잘 안 갔다. 하느님은 왜 젊은 부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1년 후 어머니는 넷째를 낳으셨다. 그 다음은 바로 나다. 내 뒤로 13명의 동생이 더 태어났다. 부모님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동생 중에 아픈 사람도 있었다. 뒤에서 두 번째 막내 동생인 롤리타는 태어난 지 5일 만에 심장 문제로 병원에 실려가 2개월이나 중환자실에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수업 시간에 수업하지 않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함께 내 동생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다. 성당에 잘 안 갔던 친구들도 매일 미사에 함께 가주었다. 둘째와 셋째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 상황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롤리타가 태어났을 때는 나도 함께 있었다. 하느님께서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실까. 왜 조그마한 아이한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실까. 그렇게 기도하며 병원에 입원한 동생의 사진을 출력해 그 밑에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난다. “주님, 제 안에 믿음과 희망을 더해 주소서.” 그때는 몰랐다.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사명을 맡기신다는 것을.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신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 주신 사명이다. 예수님께 십자가의 길을 맡기셨듯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맡기셨던 것이 아닐까. 덕분에 하느님께서 우리 가족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 깨달았다. 우리 모두에게도 힘든 순간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 아팠던 적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로 떠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하느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이시고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해도 말이다. 물론 말로 하기는 쉽고 글로 쓰는 것도 쉽지만 삶 속에서 그 뜻을 실천하는 건 쉽지 않다. 우리는 처음부터 큰 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작은 것부터 하느님 뜻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몸살이 났을 때, 기차를 놓쳤을 때, 친구와 오해가 생겼을 때?. 그 순간에도 ‘혹시 이 안에 하느님 뜻이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보는 마음. 그런 작은 실천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섭리를 조금씩 배워가고 언젠가 큰 시련 앞에서도 그분 뜻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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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1 오전 9:26:0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