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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요?(오현화 안젤라,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2025-05-20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금까지 많은 국민이 정치적인 불안정 속에 뒤숭숭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갈등과 조기 대선과 관련해 누구나 자기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때로 분노와 혐오가 걸러지지 않고 드러나기도 한다. 기나긴 긴장감에서 나와 날 선 언어를 만나게 되면 엄청난 피로와 함께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들 이야기한다. “정치 이야기 좀 하지 마세요.”

정치 이야기란 과연 무엇일까? 정치 이야기는 결코 특정 정치인을 옹호 혹은 비판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인에 대한 편향은 그 정치인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편향으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내가 지지하는 A라는 정치인이 내세우는 정책이 내 생각과 다를 때, 어떤 사람들은 A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A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란 속에서 때로 우리는 정책과 정치인을 분리하지 못해서, 그저 혐오의 언어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정책은 주류 정치의 의제와 너무나 떨어져 있다. 이런 의제는 소위 ‘진보’ 내지는 ‘좌파’ 의제로 분류되기도 한다. 정작 진보나 좌파의 의제와 얼마나 닿아있는지는 살펴보지 않고, 일단 낯설고 불편하면 ‘진보·좌파·빨갱이’로 분류한다. 환경과 관련된 의제는 대체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 환경을 보존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대단히 반진보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소수 의제로 치부되는 것이다.

작은 의제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적고, 따라서 더욱 악을 쓰며 그 의제를 외치지 않는 이상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절차에 따르지 않고, 단상을 점거하거나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절차에 따르다 보면 번번이 가로막혀 그런 거다.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당연히 피곤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이야기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은 그 자체가 더욱 정치적인 행위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는 이가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자의 입을 틀어막는 행위다.

환경과 관련된 의제들에서 주체가 되는 피조물들은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대신 목소리를 낸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겹고 시끄러울 수 있다. 예리코의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가 지나가는 예수님의 일행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소리 지를 때, 누군가는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는 반복해서 소리 질렀고,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라고 하셨다.

소리를 지르는 대상이 왜 악을 쓰고 있는지, 우리는 들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할 대상은 가난한 사람·고통받는 사람·악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혐오와 착취를 그럴 듯하게 정치적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 혐오의 정치를 향해 가난한 형제들과 피조물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라고 안내하고, 때로는 꾸짖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작은 이들의 목소리가 덮여버리지 않는 세상, 그래도 좀더 나아지고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르게 식별하고 바른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말자.



오현화
[ 2025-05-20 오후 3:47: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