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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사랑은 행하는 것(조남대 미카엘, 수필가, 시인) 2025-05-20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 내린 결정이지만, 10여 년 동안 기도와 봉헌의 삶을 함께해 온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의 이별은 가슴 아팠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쯤 만나 기쁘거나 슬픈 일을 함께 나누며 따스한 동행은 계속되었다.

2009년 이사하면서 교적을 옮긴 것을 계기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은 뒤로하고 아내와 함께 ‘사랑은 행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 가입했다. 레지오 마리애가 기도를 중심으로 한 영적인 활동이었다면 빈첸시오회는 삶의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을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돕는 구체적 실천의 장이었다.

주일 미사 전후로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고, 주 1회 모임에서는 기도와 활동 보고를 나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매달 후원금과 함께 쌀과 생필품을 전하며 그들의 형편을 살핀다. 한때는 회비만으로는 부족해 명절이 다가오면 한과, 포도·축산물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등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입지 않는 옷을 모아 정갈히 손질하여 이웃에게 전하기도 했다.

봉사의 길은 점차 넓어져 총무에서 부회장·회장까지 맡게 되었고, 사목회의 사회복지분과장도 두 차례나 수행했다. 교회 내 직책을 사양하고 싶었으나, ‘순명과 봉사’라는 말씀 앞에 기꺼이 응답했다.

매달 이웃을 방문할 때면 작은 도움에도 두 손 모아 감사하는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나 자신이 더 큰 기쁨을 맛본다. 특히 명절을 맞아 소고기와 쌀국수를 전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라는 말씀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갈 때보다 한결 가볍다.

드물게 후원 대상자의 형편이 나아져 더는 도움을 드리지 않아도 될 때면 하늘을 나는 듯 기뻤다. 하지만 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홀몸노인 같이 후원을 멈출 수 없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젖는다. 어쩌다 후원 대상자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부모님을 잃은 듯하여 빈첸시오회 차원에서 장례를 챙기고 연도를 바치는 등 최선을 다해 보살펴 드린다.

빈첸시오회 활동은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이제는 다시 평회원으로 돌아와 조용하지만, 꾸준히 이웃을 찾아뵙는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 동안 우리 가정에는 마치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듯한 평안과 기쁨이 이어졌다. ‘만사형통’이라는 말 그대로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로마서 8장 28절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기쁨이나 고통을 비롯해 모든 일에 하느님 은총이 임하고 계심을 믿는다.

그동안 빈첸시오회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내세울 일은 없지만 가장 작은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노력했다. 정성을 전하며 그들과 고통과 기쁨을 나누고, 그들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을 뵙고자 한 시간이 쌓여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의 여정도 그분의 계획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조남대
[ 2025-05-20 오후 3:47: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