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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 디지털 혁명 대응과 일치의 영성 지향 | 2025-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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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핵심은 우리를 모두 형제자매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저의 전임자이신 레오 13세의 말씀을 따라, 오늘 우리도 이렇게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복음이 세상 안에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면 온갖 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회복되지 않겠습니까?’(회칙 「새로운 사태」 19항)”(레오 14세 교황 즉위 미사 강론 중) 레오 14세 교황이 18일 즉위 미사를 주례하며 공식적으로 베드로 직무 시작을 알렸다. 교황은 즉위 미사에서도 ‘가톨릭 사회교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를 언급했다. 새 교황에 관해 알 수 있는 키워드 「새로운 사태」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역사를 들여다봤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 「새로운 사태」 레오 14세 교황의 탄생으로 가톨릭교회의 대(對)사회 메시지가 주목받고 있다. 교황은 선출 후 10일 추기경들과의 첫 공식 알현 자리에서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AI의 발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레오 14세를 교황명으로 정한 이유라고 밝히며, 130여 년 전 반포된 회칙 「새로운 사태」를 소환했다.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혼란과 노동 문제에 대응해 ‘노동 헌장’이라 일컫는 역사적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발표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고, 급진적 사회주의가 확산하는 가운데 교회는 자본과 노동, 권리와 의무 사이에서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자임했다. 교황은 회칙을 통해 노동의 존엄, 사유재산의 권리, 국가의 사회적 책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명확히 천명함으로써 가톨릭 사회교리의 문을 열었다. 이후 교회는 레오 13세 교황이 남긴 「새로운 사태」 정신을 뿌리삼아 사회를 향한 교회 가르침을 시대 변화에 맞게 계승·발전시켜왔다. 세상, 특히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반포한 교황의 문헌들은 이 회칙을 근간으로 확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사태」 반포 40년 후인 1931년 비오 11세 교황은 회칙 「사십주년」(Quadragesimo Anno)에서 경제 구조 개혁과 보조성의 원리를 강조하며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전체주의 양극단을 동시에 비판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1961년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과 1963년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반포, 국제적 정의와 인권, 냉전 시대 평화를 호소했고,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7년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에서 ‘개발 없는 평화는 허상’임을 천명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했다. 1981년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에서 노동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인간 실현의 장으로 보며, 기술사회에서 인간이 소외되지 않도록 경고했다. 이어 「새로운 사태」 반포 100년을 맞은 1991년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을 발표하고 냉전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새로운 윤리적 틀을 제안했다. 21세기로 접어들며 교회는 생태위기와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에도 응답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9년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에서 윤리 없는 시장경제를 비판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생태 정의를, 2020년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는 국경을 넘어선 형제애를 강조했다. 130여 년 전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 존엄을 외쳤던 교회는 시대 변화를 거쳐 이제 생태계 전반에 대한 책임과 급변하는 기술 속 인간이 서야 할 자리 자체를 묻고 있다. 그 맥락 안에 새 교황이 자신의 교황명을 선택한 이유와 「새로운 사태」를 왜 다시 언급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박동호 신부(서울 사당동본당 협력사목)는 “「새로운 사태」는 ‘세상 위의 교회’에서 ‘세상 속 교회’로, 즉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에 대해 도덕적 권고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금석이 됐다는 면에서 의미가 큰 회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에는 전쟁과 평화의 관점은 물론, AI·생태계·경제·정치 등 긴장의 벼랑 끝에 서 있다”며 “레오 14세 교황이 또 다른 ‘새로운 사태’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분명한 식별을 제시해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레오 14세 교황은 8일 선출 직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리에서 자신을 “성 아우구스티노의 아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회원”이라고 소개했다. 교황명을 ‘레오’로 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신앙적 뿌리와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으로 이어온 삶을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다. 레오 14세 교황이 속한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한마음 한뜻’(Anima Una et Cor Unum)이라는 영성 아래 복음을 살아가고 있다. 자기 자신과의 일치, 이웃과의 일치, 형제들과의 일치,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수도회 정신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말이다. 수도회는 4세기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였던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에 뿌리를 두고 성인이 강조한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에서 시작해 공동체 생활을 제일의 사도직으로 여기고 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1244년 인노첸시오 4세 교황이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여러 은수 공동체를 아우구스띠노의 생활 양식과 규칙을 따르는 하나의 수도회로 통합하도록 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합병은 은수자들 스스로의 바람이기도 했다. 1256년 알렉산데르 4세 교황의 칙서로 이를 확고히 하면서 대통합을 이루게 된다. 수도회는 하느님에 대한 내적 탐구와 공동체 정신에 집중하면서 성장해갔다. 하지만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소속으로 사제품까지 받았던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대사에 관한 95개 반박 논제를 발표하고 수도회를 떠나면서 종교개혁까지 이어지게 됐다. 그 결과 엄청난 박해의 시기를 거쳤다. 하지만 박해와 순교도 수도회의 선교 열정을 막진 못했다. 멕시코를 시작으로 라틴 아메리카 전 지역에 퍼졌으며 필리핀과 일본에도 진출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는 중국에도 진출해 공산화되기 전까지 학교와 고아원 설립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현재 전 세계 50개국에서 3500여 명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한국지부 제공 한국에는 1985년 당시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 요청으로 진출했다. 호주와 영국관구에서 파견돼 공동체를 형성했고, 1990년부터 한국인 양성자가 입회했다. 현재 한국 지부에는 선교사 4명을 포함해 22명이 인천 본원과 의정부 분원에서 양성·영적 상담·상설 고해·피정 지도·병원 사목·군인 사목 등으로 수도회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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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21 오전 7:32:19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