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희 대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대주교 윤공희 / 김형수 / 대중의책방
1924년 평안도서 태어나 월남
현대 교회 나아갈 방향 제시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참석
유신 정권·신군부에 맞서
민주화 운동 중심에 서기까지
격동의 한 세기 삶·신앙 기록
“대주교 윤공희는 1924년에 태어나 2024년에 백 살을 넘긴 한국 가톨릭교회의 지도자이다. 지상에 현존하는 가톨릭 주교 중 최고의 연장자라 한다. 뼈아픈 백 년의 기억을 간직한 채 아직도 살아 있는 인체 박물관이라니! 흐르는 세월의 공격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피조물이란 없다. (중략) 이 연약한 박물관이 증언하는 것은 전 생애를 통해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를 향한 ‘순명의 고독’을 지켜온 존재의 무거움이다.”(28쪽)
윤공희 대주교의 삶과 신앙을 다룬 평전 「대주교 윤공희」가 출간됐다. 평전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 대상의 행적이 남다르고 귀감이 되어 이야기할 ‘거리’가 다채로워야만 쓸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윤 대주교를 ‘인체 박물관’이라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 대주교가 평안남도 진남포(현 남포) 용정리에서 태어난 해가 1924년, 일제강점기 전반기다. 지금은 ‘종교’라는 단어도 잊힌 북한이지만 1930년대 초반만 해도 한반도에서 평양교구의 세례자 수가 가장 많았다. 윤 대주교는 1937년 북한 지역 첫 신학교인 덕원신학교에 진학한 이후 잇따라 일본어 사용 및 일본식 성명 강요, 태평양 전쟁 조선인 징집에 따른 징병검사 등을 겪는다. 철학과 2학년인 1945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황의 무조건 항복’ 방송을 들었고, 한 해 뒤에는 신학교 운동장에 와 있는 소련군을 보게 된다.
덕원신학교가 북한 정권에 의해 강제 폐교되고, 박해받는 북한 교회 사정을 알리고 향후 재건을 위해 신학생 지학순(초대 원주교구장)과 월남한 뒤 사제품을 받은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한다. 로마 유학길에 오른 게 1956년, 1960년대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4회기에 참가 및 참석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미사 때 사제와 신자들이 마주 보고 라틴어 경문과 기도문을 우리말로 바치는 변화를 맞는다. 그리고 1973년 제7대 광주대교구장에 임명된 윤 대주교는 2000년 퇴임할 때까지 유신 정권과 신군부에 맞서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다. 교회 안팎으로 그야말로 격동의 한 세기를 몸소 겪은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가톨릭교회가 나갈 방향과 동력을 제공한 역사적 공의회라는 점을 사제들에게 끝없이 환기시켰다. (중략) 특히 미사 때 사제와 신자들이 마주 보게 한 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집약하는 상징적인 조처로서 가톨릭의 행동반경을 한껏 넓혔다. 그로 인해 교회는 신자를 중시하고, 성직자에게 새로운 활동을 권장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예언자적 참여를 촉구하는 ‘사목헌장’을 채택했는데?.”(226쪽)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사실상 단절되어 있었다. (중략) 그 경계를 교회가 지키고 서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이때 뛰어난 사제들이 있어서 놀라운 용기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차대한 사명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5.18 항쟁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과 정신 계승, 관련자에 대한 보상까지 광주가 안고 있는 염원은 한없이 컸다. 윤공희 대주교는 날마다 그 중심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421쪽)
(사)광주전남김대중재단 최경주 이사장의 권유로 이 책을 쓴 김형수(신동엽문학관 관장) 작가는 비신자다. 그러나 대학생 신분으로 광주에서 5.18을 겪었던 저자는 언젠가부터 광주 공동체가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동참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윤 대주교의 ‘인간적 요소들’에 강렬히 끌려 집필에 임했다. 다양한 자료와 후배 및 제자 사제들을 만나 생애의 맥락을 소설적으로 엮은 뒤 윤 대주교에게 확인받는 경로를 택했다. 근거 자료가 있지만 윤 대주교가 기억에 없다고 하여 애석하게 뺀 이야기도 있고, 과거의 무용담 근처를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는 사제도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은 문학적 완성도보다 ‘살아 계시는 대주교님!’에게 ‘광주’라는 지역 사회가 감사의 마음을 바치는 데 방점이 있다”며 “언제나 하느님의 대지 위에 서 있는 이 놀라운 겸손이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미래의 윤리에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