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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사순을 사순답게 하는 음악(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 2025-03-26



유럽에 살면서 매년 이맘때면 마주하는 것들이 있다. 사순 시기를 앞두고 카니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 등 나라마다 특정 지역에서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며칠 동안 먹고 마시는 파티다.

내가 살고 있는 독일 북서부 지역은 특히 이 카니발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때에는 대다수 사람이 분장하고 출근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대낮부터 새벽까지 퍼레이드와 공연을 이어간다. 성탄절 이후 맞이하는 가장 큰 행사이기도 하다. 어둡고 추운 긴 겨울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많은 인파가 모이는 중심지의 대중교통이나 밤 거리에는 주체할 수 없을만큼 신이 나버린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즐긴만큼 그들이 실제로 사순 기간 절제된 삶을 사는지 묻는다면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보다 이런 문화가 전통적으로 지속되어 자리 잡고 어린 아이들도 함께 즐기며 그 기원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은가?

한바탕 흥이 가시고난 뒤 본격적인 사순절이 시작되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음악가들이다. 전문 연주자들은 물론이고, 아마추어 연주자나 합창단 모두 도시 곳곳에 있는 성당과 공연장에서 저마다 크고 작은 공연을 매일 준비한다. 이때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은 복음사가의 내용을 기초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작곡한 수난곡이다.

격정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못을 박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합창곡 ‘Herr, unser Herrscher(주님, 우리의 주님)’으로 시작하는 ‘요한 수난곡’은 예수님이 재판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는 장면을 음악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했고,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님의 발걸음이 들리듯 장엄하게 시작하는 ‘마태오 수난곡’은 예수님의 수난을 예언하고 죽음을 장엄하게 그려냈다. 두세 시간 길이의 긴 수난곡을 한 번 듣고나면 숙연하고 차분해지면서 사순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이 시기에 같이 연주되는 작품들 중 내가 좋아하는 다른 음악은 ‘Stabat Mater(슬픔의 성모)’와 ‘Membra Jesu nostri(예수님의 거룩한 지체)’가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스타바트 마테르’는 안토니오 비발디,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 프란시스 풀랑크 등 많은 작곡가가 작품을 남겼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몸(발·무릎·손·옆구리·가슴·심장·얼굴)을 묵상하는 ‘멤브라 예수 노스트리’는 디트리히 북스테후데가 작곡했다.

성당에서 연주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서 치유된 마음에 여운이 남은 나는 의식적으로 요제프 하이든이 작곡한 ‘가상칠언’과 프란츠 리스트의 ‘십자가의 길’을 피아노 방에서 홀로 연주하곤 한다. 때마침 봄이 찾아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활기가 넘치는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다시 돌아본다. 부활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손일훈(마르첼리노) 작곡가
[가톨릭평화신문 2025-03-26 오전 7:32:16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