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참 묘하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옷을 입은 사람의 상태나 기호, 신분, 직업, 품격 등이 드러난다. 잠잘 때는 잠옷, 운동할 때는 운동복, 젊어 보이는 옷, 중후해 보이는 옷, 더울 때 입는 옷, 추울 때 입는 옷, 직업에 따른 제복 등 옷은 많은 것을 규정짓는다.
수도원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삶의 과정도 어찌 보면 옷의 변천 과정인 것 같다. 지원기, 청원기 때 입는 옷, 수련기 때 입는 옷, 유기서원기 때 입는 옷, 서품 후에 입는 옷…. 옷이 점점 변해간다.
지원기, 청원기 때에는 검은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수련기 때에는 목에 로만 칼라가 없는 검은 수단을 입고, 유기서원기 때에는 정식 수단을 입고, 서품을 받게 되면 로만 칼라가 있는 사제복과 제의를 입게 된다. 지원기, 청원기 때에는 언제 시간이 흘러 수련복을 입어보나 하고 수련자들을 부러워하고, 수련기가 되어 검은 수련복을 입으면 언제 시간이 흘러 정식 수단을 입어보나하며 유기 서원자들을 부러워하고, 유기서원기 때에는 언제 서품을 받아 제의를 입어 보나 하며 신부님들을 부러워한다.
어찌 보면 옷에 대한 욕심으로 살아온 것 같다. 첫 서원을 할 때 새 수단을 입지 못하고 선배에게서 물려받은 헌 수단을 입을 수밖에 없어, 입이 석 자나 튀어나와 삐친 채로 몇 달을 살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이제는 입을 수 있는 제복은 다 입어보아서 옷에 대한 욕심이 없을 것 같은데,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가 보다. 감히 주교님이 입는 옷을 입으면 어때 보일까 하는, 혼이 날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그럴 기회가 왔다. 영국 수도원에서 일할 때였다. 한국에는 그런 일이 없는데, 영국에서는 주교님들의 모자와 지팡이를 유리 진열장에 넣어 전시하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직원을 살살 꼬드겨 열쇠를 얻어낸 후 잽싸게 주교님의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들어보았다. 느낌이 묘했다. 직원이 주교님 복장을 한 나를 사진 찍어 보여주더니 제법 어울린다고 하면서 낄낄낄 웃었다. 결국 원장 수사님께 들켜 혼이 나고 다시 유리 진열장에 고이 모셔두는데, 머릿속에 이런 말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에 등장하는 말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여,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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