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카와 미와 감독, 영화 '멋진 세계' 포스터
‘이 세상은 최선을 다해 살아갈 만큼 <멋진 세계>인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열연한 ‘멋진 세계’는 관객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전과 10범인 ‘미카미 마사오’는 마지막 형기를 끝내고 13년만에 출감합니다.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 들락거렸고 이젠 건강마저 해쳐서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번엔 진짜 건실하게 살아야지!”라고 결심하지만, 야쿠자 출신으로 살인까지 저지른 전과자에게 ‘평범한 삶’이란 그저 꿈일 뿐이지요. “나를 쫓아내지 않은 곳은 교도소 뿐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주는 곳은 없고 무시와 냉대의 눈길만이 따라다닙니다.
오랜 방황 끝에 요양시설의 보조원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지요. 몇몇 고마운 이웃들 덕분이었습니다. 스크린 속 대사 그대로 미카미는 그곳에서 “잃어왔던 사람에 대한 애정”을 조금씩 회복합니다.
하지만, 요양시설에서도 약자를 업신여기고 괴롭히는 폭력은 여전했습니다. 미카미는 분노하지만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꾹꾹 눌러 참아야 했지요. 그 ‘부조리한 인내’가 결국 그의 심신을 무너뜨리고 맙니다. 영화는 2시간에 걸쳐 무망(無望)한 세상의 단면을 드러내 보인 뒤 가슴 먹먹하게 마무리됩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추천하며 “과연 이 세상이 적응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라는 물음을 향해 깊게 나아갔다”고 평했습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떤 답을 낼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라고 하셨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미카미에게 ‘위로’가 돼주었던 선한 이웃들을 떠올리며 저는 산상수훈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몇 안 되는 그들이 차가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데울 수 있을까요. 교회가 호소하는 사랑과 연민의 나눔은 왜 그리도 먼 길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제 얕은 믿음은 언제나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영화의 라스트씬에서 카메라는 ‘맑은 하늘’을 무심히 응시하고, 그 위로 ‘멋진 세계’라는 엔딩타이틀이 걸립니다. 마치 ‘당신이 지으신 이 세상은 진정 멋진 세계인가요?’ 하고 창조주께 간절히 여쭤보는 것 같습니다.
글 _ 변승우 (명서 베드로, 전 가톨릭평화방송 TV국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