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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을 본 세대 2024-11-21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길 어두움을 본 세대가 시야가 넓다고 하였습니다. 어두움, 전쟁 같은 상황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야가 넓다고 합니다.

인간에 대한 희망과 인간에 대한 절망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에 인간은 아주 극한의 에고이즘을 보입니다. 생존본능 때문이지요.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 전쟁이기에, 전쟁 중에 인간은 극한의 에고이스트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에 대한 절망감을 갖게 되는데, 반면 그런 상황 속에서 휴머니즘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서, 전쟁터를 찾아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어두운 상황은 인간의 양극단성을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자기탐색은 전쟁이 아닌 평화 시에도 자기 안의 어두움을 들여다 보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전쟁이 치열하지요.

결국 전쟁이란 내면의 어두움이 외적으로 표출된 것이기에, 내면을 보는 작업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인들의 협소한 관점이 설명이 됩니다. 종교인들의 시야가 좁은 이유는 자기 안의 어두움을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안의 어두움을 모두 외부의 적으로 돌리거나, 혹은 마귀가 주는 유혹이라고 전가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 안의 어두움, 극한의 에고이즘을 보지 않으면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본인 자신이 분열의 원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상대방을 변화시키거나 개선시키고자 할 때의 첫걸음은, 현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상대방을 판단, 비교, 거부하게 되면 상대방의 방어적 행위만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이지요. 사람은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방어의 본능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개선을 위한 자연스런 성장과정을 밟아갑니다. 그러나 수용은 약점을 묵인해주거나 여론에 동조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상대방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 사람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수용입니다. 이런 수용은 자기 내면의 어두움을 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글 _ 홍성남 신부 (마태오, 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1987년 사제 수품. KBS 아침마당 특강 ‘화날 땐 화내고, 슬플 땐 울어야 한다’로 전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저서로 「챙기고 사세요」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 「새장 밖으로」 등이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11-21 오전 8:32: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