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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과잉의 디지털 세상, ‘마음의 거울’ 보며 자제력 키워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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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나의 신체 부위는 다름 아닌 ‘얼굴’이다. 늘 남에게 보여주지만 ‘거울’이란 도구 없이는 직접 내 눈으로 절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얼굴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강력한 소통의 수단이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고 한다. 신경학적 관점에서도 얼굴의 표정은 뇌의 감정처리와 관련이 있다. 반복적인 생각과 행동은 습관을 통해 형성되고 얼굴표정에 영향을 준다. 칼 융(Carl Jung)은 “얼굴은 사람의 무의식적 감정과 내면의 상태를 반영하는 창”이라고 한다. 때론 남들은 내 얼굴을 보고 나의 감정을 알아채는데 유독 나 자신만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일 것이다. 마음에도 거울이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울, 내 스스로를 경계하고 감시하면서 나의 행동을 통제하게 하는 ‘마음 거울’ 말이다. 양심으로 인한 죄책감도 ‘마음 거울’을 통해 전달된다. 살다 보면 거울이 탁해지기도 하고 왜곡되고 깨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탁해진 거울을 투명하게 닦아주고, 왜곡된 거울을 바로 잡아주고 깨진 거울을 새로 갈아 준다. 거울을 자주 보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자기절제 사회」의 대니얼 액스트가 보고한 실험결과에 의하면 아이들 앞에 ‘거울’을 놓기만 해도 사탕을 몰래 가져가는 비율이 70%나 줄어든다고 한다. 거울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주는 기능이다. 동시에 나 스스로가 나를 바라보게 한다. ‘너 혼자가 아니야. 주변에서 널 보고 있어’라는 감시의 눈길, ‘너는 사탕 따위나 슬쩍 가져가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양심의 소리를 거울을 통해 비추어준다. ‘거울’이 없다면 아이 대부분이 달콤한 ‘사탕’의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즉각적 보상을 주는 ‘달콤함’은 그 어떤 유혹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울’로 인해 자기 얼굴에 드러난 자신만의 존엄성을 본다.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느낀다. 무엇보다 즉각적인 만족감보다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자제력’으로 자기를 괜찮은 사람으로 보는 자존감을 배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통계청 조사결과에 의하면 ‘범죄’가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꼽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끊이지 않는 ‘묻지마 범죄’와 ‘데이트폭력’이 날이면 날마다 뉴스에 등장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범죄의 문제와 책임을 정신건강이나 심리적인 질병 문제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치료와 회복을 지원하는 치료적 접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범죄의 원인을 ‘도파민’의 불균형이나 전두엽의 기능 저하로 보고 ‘뇌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자존감을 자라게 하는 ‘자제력’ 훈련을 간과하게 된다.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은 충동적 욕구를 제어하지 못해 범죄를 행할 위험이 크기에 자제력 강화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자제력’은 영적 훈련의 기본이기도 하다. 기도와 묵상 그리고 봉사와 희생도 자제력이 동반된다. 유혹과 욕망을 제어하는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며 신앙생활의 중요한 덕목이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자리를 욕망하다 유혹에 빠져 자기 통제에 실패하면서 금지된 열매를 따 먹는다. 디지털 동산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가? 유혹 과잉의 디지털 세상은 손가락 하나만 눌러도 수많은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다. 즉각적이고 자극적이고 달콤한 유혹 홍수의 세상이다. 과잉자극으로 선택 피로에 시달리면서 쏟아지는 유혹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유혹 과잉의 시대에서의 ‘자제력’은 낡고 쓸모없는 덕목처럼 뒷전에 밀어 넣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느님의 거저 주심과 자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탈을 쓴 무신론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신뢰할 수 있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최근 세계주교시노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연설 중 일부다. 실천으로 행동으로 책임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신론자라는 무서운 말이다. 무상적 은혜와 자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력한 자제력이 필요한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의 은총 없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자기절제’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적 거울이 더욱더 필요하다. 유혹 폭격에 맞서기 위해서 내면을 살피는 거울이 있어야 한다. 달콤한 사탕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제력은 강력한 억압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자기 성찰인 ‘마음 거울’에서 시작된다. <영성이 묻는 안부>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심 깊은 사람, 평화로운 사람,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별개인 듯합니다. 성경 말씀으로 눈물을 흘리고 성령체험으로 전율을 느끼면서 영감을 얻지만 그 말씀과 깨달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저 자신에게도 묻게 됩니다. 특히 요즘처럼 유혹의 포화상태에서 선택 피로에 시달리다 인내력도 의지력도 방전이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자제력을 잃고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더 큰 유혹에 빠지게 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일 ‘열량’과 싸우고, 담배와 술 그리고 마약·도박·쇼핑과 스마트폰으로부터의 과잉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은 오롯이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거지요. 강제로 억압하고 통제하기보다 멈춰 기도하고 성찰하면서 내 스스로를 비추는 마음 거울을 바라보면서요.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면서 평화와 고요의 길을 걷는 이 시대의 중요한 덕목인 ‘자제력’을 청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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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1-20 오전 9:52:14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