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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렙톤 두 닢 커피 2024-11-19

신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 신부님께서 강조하신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신부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야 해.” 다양한 신자분들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식사를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음식을 가리면 안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여전히 입 짧은 신부로 남아있습니다만, 이런 식성에도 다행히 딱 한 가지 장점은 있습니다. 유일하게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미각 세포 덕분에 입맛이 저렴하다는 것입니다. 식도락은 남의 이야기이고 맛집은 손님이 오실 때만 찾아봅니다. 고양이 똥 속 원두로 만든 커피가 비싼 값을 받는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적어도 제 입에는 커피, 프림, 설탕의 삼위일체가 빚어내는 영성적인(?) ‘믹스 커피’가 언제나 최고입니다.


이제는 K-커피로 거듭나고 있는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만큼, 다들 이 믹스 커피와 관련된 추억들이 한 가지씩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에게는 신학교 시절 동기 수녀님들이 사주시던 자판기 커피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교시 수업이 끝나고 꿀맛 같은 10분의 쉬는 시간이 되면 신학생들을 불러 모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 커피 마시러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비몽사몽 중인 동기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서, 수녀님들은 자신의 동전 주머니를 아낌없이 탈탈 털곤 했습니다. 때로는 졸린 눈을 비비며 억지로 끌려나가기도 했지만 시원한 바람과 함께 다디단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은 장정만도 수십 명가량이나 됩니다.


일반 대학교와는 달리 카페 한곳 없는 작은 신학교이기에 ‘커피 하우스’라고 이름 붙인 그 야외 휴게실의 자판기 커피를 참 많이도 즐겨 마셨습니다. 하지만 수녀님들이 뽑아주시던 커피가 조금 더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까닭은 아마도 서로에게 200원의 가치가 달랐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돈이 궁한 학생 시절이었어도 자판기 커피값 정도는 거의 문제 되지 않던 우리들이었지만, 정말 적은 용돈을 받는 수녀님들에게는 몇 잔만 모여도 적잖이 영향을 주는 금액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모을 때는 아낄지언정 베풀 때는 주저함 없이 자판기 배를 불려주던 수녀님들의 마음이 담겨있었기에 지금까지도 그 커피 맛을 잊을 수 없는 것 아닐까. 몇 해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제목처럼 ‘커피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수녀님’들의 그때 그 커피에, 저는 이제야 이렇게 이름 붙여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렙톤 두 닢 커피’라고 말이죠.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마르 12,41-44)에서 예수님께서는 렙톤 두 닢을 넣은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일부가 아닌 모든 것을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절대적인 양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담겨있는 상대적인 가치를 눈여겨보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있어 얼마만큼의 소중함을 예수님께 내어드릴 수 있을까요?



글_김영철 요한사도 신부(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가톨릭신문 2024-11-19 오후 5:32:16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