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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신부의 철학 일기] 좋음[善]이라는 작은 꽃 2024-11-06

얼마 전 사랑초 화분 세 개를 얻었습니다. 베란다 천장에 철사를 늘어뜨려 하나씩 달아놓았죠. 아침에 해가 드니 얌전히 닫혀 있던 꽃망울이 하나둘 가슴을 열어젖힙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한편으론 지금이 어느 땐데 이렇게 꽃놀이인가 합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상황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제는 이란까지 상대 범위가 넓어지며 전쟁이 계속되고, 러시아는 북한까지 끌어들여 우크라이나 침공을 멈추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이런 호전적인 지도자들, 네타냐후·푸틴의 ‘절친’이 다시 대통령이 되려는가 봅니다. 본인이 승리할 때만 투표 결과에 승복하는 인물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된다는 것을, 아니 이번엔 더 강력해져서 마음껏 그 권력을 휘두르면서 여성들을, 장애인들을, 이민자들을, 노인들을, 그리고 약소국들을 다시 한 번 놀림감으로 만들 것이라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습니다. 저는 미국 대선 전에 글을 쓰고 있고, 여러분은 바뀐 세상에서 이 글을 읽으실 테죠. 제게 살짝 일러주세요. 어떤가요? 어떤 세상이 되어 있나요?

하지만 이렇게 씩씩대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수많은 일을 뉴스로 접하면서도 제 마음이 그다지 요동치지 않습니다. 핍박받는 이들이 안타깝지 않아서가 아니라, 악한 이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전쟁의 고통을 먼 나라 일로 돌려서가 아니라, 어른이 된 저는 자신의 미약함을 너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생 동안 과연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나 자신의 가족도 어찌하지 못하는데 무슨 먼 나라 전쟁 걱정에, 나라와 교회 걱정인가? 이렇게 힘 빠진 소리를 하다 보면 “그냥 너 먹고살 걱정이나 해”라는 말에 별 대꾸도 못 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정의는 무슨 정의, 세상이라는 것이 원래 강한 자의 규칙대로 흘러가는 거지.

플라톤의 「국가론」은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입니다. 1권에서 ‘트라시마코스’라는 소피스트가 등장합니다. 그의 등장 이전에 정의는 “해야 할 바를 하고, 주어야 할 것을 주는 정직함”이라든지, “친구에게는 도움을, 적에게는 해를 주는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는데, 소크라테스가 그 의견들의 보완점을 이야기하던 참이었죠.

트라시마코스는 “그딴 헛소리 다 필요 없어!”라고 소리치면서, 정의는 “강한 자에게 이득이 되는 시스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왕정에서는 왕이, 귀족정에서는 귀족들이, 민주정에서는 시민들이 입법자이고 권력자이니 그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국가를 다스리는 원리이고, 정의라는 것이죠. 소크라테스가 물론, 그러한 것은 ‘덕’이 아니므로 정의일 수 없다고 반박하지만, 참된 정의는 개인 안에서의 윤리적 조화, 공동체 안에서의 정치적 조화임을 말하며 그 반박을 완성하기 위해 10권까지의 분량이 필요했습니다.

트라시마코스도 철학자였고 선생이었는데, 옳고 그름을 몰랐을까요? 저는 힘을 이야기하는 그가 오히려 그저 힘 빠진 지식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힘은 세상을 바꾸는 권력이 아니라 선(善)으로 나아가는 영혼의 힘, 선한 의지임을 깨닫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삶은, 어느 정도는 당연한 삶의 형태지만, 그것뿐이라면 그 갈망이 사라질 때, 같이 스러져 버릴 허무한 삶입니다.

사랑초 꽃봉오리 하나가 하찮지 않습니다. 이 작은 꽃은 ‘내가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피고, 때가 되면 집니다. 우리가 힘을 내서 피울 수 있는 꽃은 좋음이라는 꽃입니다. 그냥 피고 질 뿐입니다. 저도 힘을 내야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11-06 오전 11:12:0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