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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남북 이스라엘 분열의 책임이 있는 르하브암 | 2024-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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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폭력성으로 혁명가의 길을 가게 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13세에 가출을 했고 평생 애정 결핍에 목말랐다고 한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마오는 교육은 최소한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유교 경전의 기초지식을 배우다 중단하고 집안의 농장에서 하루종일 일해야 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마오는 잦은 구타로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당시 중국에는 노동력이 부족한 프랑스로 가서 일하면서 외화도 벌고 동시에 외국어와 선진문물을 배우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마오쩌둥도 프랑스에 가고 싶었지만 수중에 여비가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북경대 도서관에서 일했는데 이 기간은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학구열이 높은 마오는 도서관에 산처럼 쌓인 책더미 안에서 지식을 쌓았다. 특히 역사 서적을 즐겨 읽었는데 고대의 제왕들은 유학을 가지 않고 정무를 통달함을 알게 되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결국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고, 중국의 역사서를 독파하며 혁명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지만 친한 친구에게도 함구했다. 역사에는 만약이란 게 없지만 르하브암도 겉으로 자신의 뜻을 이야기 하지 않고 안으로 품고 후일을 도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스라엘 왕국 제4대 국왕인 르하브암(기원전 931~913년) 때 남북 이스라엘이 분열된다. 그는 다윗의 손자이자 솔로몬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을 물려받았다. 솔로몬으로부터 왕위는 물려받았지만 솔로몬의 과도한 부역과 세금징수 등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다윗 왕가에 대한 반감은 폭발 직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로보암을 앞세워 부당한 부역과 높은 세금을 낮춰 달라고 요구했다. 르하브암은 사흘 뒤 답변하겠다고 하며 솔로몬을 보좌하던 관료들과 논의했다. 관료들은 솔로몬왕 때 세금이 너무 과했다며 예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견에 긍정적 답변을 줄 것을 권고했다. 르하브암은 자신과 함께했던 소장파 신하들과도 회의를 했다. 그러나 젊은 귀족들은 백성들을 너무 풀어주면 새로운 왕을 우습게 보며 권위가 실추된다고 더 가혹하게 통치하라고 조언했다. 르하브암은 약속한 사흘이 지나 신하들을 만났는데 인생의 최고 악수(惡手)를 두었다. 이 한 마디가 바로 남북 이스라엘 분열의 도화선이 됐다. 지도자는 쉽게 속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내 아버지께서 그대들의 멍에를 무겁게 하셨는데, 나는 그대들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소. 내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을 가죽 채찍으로 징벌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할 것이오.”(1열왕 12,14) 불이 타고 있는데 휘발유를 부은 셈이다. 이미 실망으로 다윗 가문에 등을 돌린 10지파는 분노하며 ‘우리와 다윗과 무슨 연관이 있나. 이제부터 너나 잘 하세요’하며 떠났다. 르하브암의 통치 영역 안에는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만이 남았다. 르하브암은 부역 감독으로 아도람을 보냈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돌로 죽여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르하브암 왕도 위기를 느껴 예루살렘으로 급히 도망하였다. 글_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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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1-06 오전 9:52:1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