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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차려입은 시니어들, 이탈리아에 은총의 하모니 수놓다 2024-11-05

“서라벌 옛 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에 짙어 갈 제 진리의 찬란한 빛 그 몸에 담뿍 안고 한 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시여.”
10월 12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성당 벽감에 자리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성인상 앞에 다소곳이 섰다. 이내 아름다운 선율이 펼쳐졌다. 바로 「가톨릭 성가」 287번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노래>였다. 세계 곳곳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찾은 순례자들은 김대건 성인상 앞에서 펼쳐지는 김대건 성인을 위한 공연에 연신 찬사를 보냈다.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산하 시니어합창단 베아띠(지휘자 정애란 베로니카, 영성지도 김우정 베드로 신부)의 로마 버스킹 현장의 모습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김대건 성인상 등 이탈리아 주요 순례지 버스킹 투어
성가 외에도 가곡 등 한국문화 알려…세계 무대로 성음악 봉사 ‘감격’


김대건 성인상 앞에서 노래한 ‘복된 사람들’(Beati)


김대건 성인상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세워진 지 1주년을 맞는 시점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버스킹은 단원들에게도 공연을 마주한 순례자들에게도 잊지 못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사실 베아띠는 김대건 성인상 앞에서 공연을 염두에 두고 이번 버스킹을 기획하면서도, 김대건 성인상 앞에서 버스킹이 성사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계 각국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순례지인 만큼, 특정 단체의 공연이 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버스킹 형태로 이뤄지는 공연이기에 성 베드로 대성당 측의 허가가 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단원들은 김대건 성인상 앞에서 공연이 불가능하게 될 지라도 김대건 성인을 현양하는 마음 하나로 공연을 준비해 왔다.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과 연락을 취하는 과정에서도 현지 관계자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추진했다. 결과 성 베드로 대성당 측에서 버스킹을 허가했고, 또 공연을 위해 특별입장까지도 배려받을 수 있었다.



한복을 차려입은 25명의 베아띠 단원들은 대기 없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입장해 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대건 성인상 앞에서 가장 어울리는 노래,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노래>를 시작으로 김대건 성인이 공경하던 성모님을 기억하며 <아베 마리아>를 부르고, 또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의 주제인 “당신은 천주교인이오?”에 대한 응답을 담아 <나는 천주교인이오>를 부르기도 했다.


베아띠 이애랑 단장(안젤라·65·제2대리구 분당성마태오본당)은 “버스킹을 준비하면서 벅참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서 “주님께서 마지막까지 함께해주셨고, 정말 은총의 나날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프라노 파트를 맡은 김경자(제노베파·75·제1대리구 죽전본당) 씨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깨닫게 됐다”면서 “순례 내내 가슴 벅차고 기뻤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펼쳐진 버스킹


김대건 성인상 앞에서만이 아니었다. 베아띠는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로마를 비롯해, 시에나, 아시시, 산조반니 등 이탈리아 내 여러 도시를 순례하면서 순례지를 방문한 세계 여러 나라의 순례자들을 위해 성음악 공연을 선보였다.


이번 버스킹 투어를 준비한 것은 성황리에 마무리한 지난 9월 21일 창단연주회에 이어 세계를 무대에서 성음악을 통해 봉사하고자하는 마음에서다.


베아띠는 그동안 교구 내에서 수준 있는 공연을 선보이며 시니어가 교회에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 활동하는 역량 있는 봉사자라는 것을 보여줘 왔다. 지금까지는 갖춰진 무대에서 공연을 펼쳐왔다면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버스킹을 펼치면서 순례자들에게 성음악을 통한 기쁨을 선사하고자 했다.


쉬운 일정은 아니었다. 베아띠 단원들의 평균 나이는 70세가량. 단원들에게 버스킹이라는 공연 형식도 낯설거니와 체력적인 어려움도 따를 수 있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3차례에 걸친 버스킹, 그리고 로마 한인본당에서 미사 중 성가봉사까지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역량을 보였다. 10월 7일 시에나 캄포 광장 열린 첫 버스킹 중에는 비까지 내렸지만, 오히려 우천 중에도 관중이 모여 환호를 들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베아띠 단원들은 모든 버스킹에 한복을 입고 노래하고, 또 <아베 마리아>처럼 서양인들에게도 친숙한 노래를 비롯해 한국어 성가와 한국 가곡 등도 선보여 한국의 문화를 서양인들과 나누기도 했다. 또 단원들에게는 나이와 국적을 떠나 노래를 통해 세계의 모든 이들과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알토 파트를 맡은 이정은(안나·77·제1대리구 권선동본당) 씨는 “버스킹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버스킹을 한다고 듣는 순간 가슴이 뛰고 저에게 이런 큰 선물이 주어졌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면서 “이동 시간만 10시간이 넘는 긴 여행이었지만 단원 모두가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밝고 행복했다”고 전했다.


이번 이탈리아 버스킹 투어를 추진하고 동행한 정애란 지휘자는 “단원들이 연세가 있으셔서 염려도 있었지만 다들 너무 건강하게 계획했던 모든 공연을 마치고 올 수 있었다”면서 “정말 이번 버스킹 일정을 함께하면서 이 연세가 되실 때까지 열심히 살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이분들의 삶의 노고를 보시고 길을 열어주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니어 합창단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이루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11-05 오후 2:32:06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