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요나 3,10)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5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 자비주일 전야에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시며 그에 대한 칙서 「자비의 얼굴」을 반포하셨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본받아 세상에 자비를 베푸는 사도가 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잔인해지며, 비참함 가운데 슬피 울부짖고 있습니다. 과학과 풍요로운 물질이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의 욕망이 저지른 자연재앙은 날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지구촌 곳곳이 이상 기온으로 인한 산불과 가뭄과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으로 이성을 잃은 잔인한 폭력과 살인과 방화와 전쟁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최고의 시성이라 일컬어지는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자신의 최고 명작 「신곡」의 ‘지옥편’에서 지옥에 다다라 문 위에 있는 무서운 글을 봅니다.
“여기에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우리 시대의 절망의 절규와 가슴 아픈 통곡의 눈물들을 보노라면 신곡의 지옥편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가 지난 다음 세대에 과연 희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두려움이 앞서게 됩니다. 이러한 긴박한 절망의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가 진정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희망을 따르는 길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모욕적인 무관심이나 우리의 정서를 마비시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습관과 파괴적인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 눈을 뜨고 세상의 비참함을, 존엄을 박탈당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외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합시다!”(「자비의 얼굴」, 15항)
우리나라의 전쟁이 끝난 뒤, 그토록 먹고살기 힘들고 비참했던 시절 수많은 어린이들이 씻지 않은 더러운 얼굴과 때 묻은 손으로 구걸을 하던 때를 떠올려봅니다. 배고프고 불쌍한 그 아이들을 외면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지나쳐 가는 가진 자들의 모습이 ‘모욕적인 무관심’일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관심이 모욕적인 무관심으로 변해가는 처참하고 냉혹한 현실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에게는 피해가 없으니 그 같은 비참함을 보면서도 추악한 비웃음을 짓는 냉소주의는 우리를 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모욕적인 무관심’과 고통과 비참의 세상에서 자비와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냉소주의’일 것입니다. 이 악한 길에서 진정 회개하지 않는 것은 회개를 한다고 해도 모두가 거짓된 회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극한 사랑의 관심과 희생의 참다운 투신이 있어야 진정한 회개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에게 사랑 실천의 중요함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의 삶이 저물었을 때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잠언과 영적권고」, 가톨릭 출판사, 34쪽)
“보나벤투라 성인도 참다운 그리스도교 지혜는 이웃을 향한 자비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지혜는 우리가 소유한 것, 나누라고 우리가 받은 것을 보람 있게 나누는 데에 있습니다. … 따라서 자비가 지혜의 벗이듯, 탐욕은 지혜의 적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46항)
요나처럼 우리도 삶에서 끊임없이 도망치려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숲에 숨어버리고 폐쇄주의와 수구주의(守舊主義) 속에서 홀로 안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니네베 사람들이 죄악의 길에서 돌아선 것처럼, 요나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돌아선 것처럼, 우리가 걸어온 악한 길인 ‘모욕적인 무관심’과 ‘냉소주의’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요나가 간곡히 말을 건네옵니다.
“잘못된 길에서 너무 멀리가면 그만큼 돌아오기 힘든 법입니다. 깊은 깨우침이 내 뇌리를 때리고 따라오라 권할 때 우리는 생명의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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