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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율리아나의 투병 단상 (8·끝)아빠 | 2024-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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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아빠는 여전히 기적이 일어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나 보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우리 아빠는 워낙 말수가 없고 표현이 적어서 그 속을 알기란 쉽지 않은데, 그 때문에 나는 아빠가 누구보다 나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식단 조절을 다시 해보는 게 어때? 고기 같은 거 일절 먹지 말고, 다리 근육운동도 좀 하고.” 세상에. 정말 모르는 소리를, 꿈같은 소리를 하고 계신 게 아닌가?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먹고도 38㎏을 벗어나지 못하고 뼈만 앙상히 남아있는 내게 식단 조절이라니. 그나마도 질질 끌고 다녔던 다리에 통증이 더 심해져서 이제는 뒤꿈치에 조금만 힘이 실려도 비명이 터져 나와 화장실조차 혼자 가기 힘들어진 내게 근육운동이라니. 아빠의 제안은 내 생각엔 가당치도 않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지금의 나는 입으로 뭐라도 들어간다면 무조건 쑤셔 넣고 욱여넣어서 버티는 힘을 비축해야 하는 때이고, 최소한으로 걸으며 다리의 자극을 피해 몸이 망가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모진 말이 될 것을 알면서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침착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아빠는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아빠, 이제 여기서 내가 더 좋아질 일은 없다고 생각해. 요 몇 달 동안 내 몸이 나빠지고 있는 속도를 봐. 자고 일어나니 휠체어가 필요해졌고, 또 자고 일어나니 아예 걸을 수가 없어졌어. 내리막길도 평탄한 내리막길이 있을 텐데, 나는 절벽으로 훅훅 떨어지는 기분이야. 중간중간 삐져나온 가지를 겨우 잡고 매달려 있다가 또다시 절벽으로 훅 떨어지는 기분.” 나의 말에 속이 상하셨는지 아빠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래도 사람이 말이야! 희망을 품고! 뭐라도 하려고 노력을 해야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기적이 생기지!” “기적은 지난 1년을 더 산 게 이미 기적이야. 이제 기적 같은 건 없어. 내게 엄청난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언제까지나 희망하며 살 수는 없는 거야. 나라고 살고 싶지 않겠어? 그렇지만 때가 되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죽음이라는 것도 준비를 해야 하는 거야?.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치만···. 이렇게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여전히도 희망을 품고 있는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해. 고맙고··· 정말 미안해.” 아빠는 오늘도 가족 카톡방에 ‘마음가짐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의 영상을 보내주셨다. 아빠는,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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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23 오전 9:32:2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