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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우정과 의리의 사나이, 킹메이커 요나탄 2024-10-23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을 꿈꿨던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유세 내내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뜨릴 것이라 주장했다. 유리천장이란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에 오르지 못한다는 비유적인 경제학 용어이다. 유리천장은 직장에서 대다수 여성들, 소수 인종, 성적 소수자들이 영향력 있고 수입이 많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우리나라의 예능계에서 유리천장을 깬 사람 중 한 명은 서혜진(레지나) PD라 생각한다. 그동안 이류음악 취급을 받던 트로트를 일시에 주류 음악으로 판도를 바꾸어놓았고 임영웅과 송가인 등 트로트 가수들을 대스타로 발굴해 냈다. 서 PD는 보수적인 조직의 방송국, 예능분야 안에서 적어도 유리천장을 깨뜨린 독보적인 인물이다. 누구도 예상 못한 일본가수들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어 크게 흥행시켰다. 그는 흥행은 기대했지만 문화교류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서 PD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는 문자투표를 할 때 시청자들이 100원씩을 내고 참여하는데, 매해 이 돈을 모아 좋은 일에 사용하려고 한다. 올해에는 5000만 원을 적십자에 기부하고 1000만 원 정도를 우간다에서 봉사하시는 수녀님들께 드리게 됐다. 팔순이 넘으신 수녀님은 “마침 보건소 봉사자들을 위한 쉼터를 지으려고 주님께 기도했는데 이틀 만에 응답이 오네요”라고 하셨다고 한다. 서 PD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극히 꺼려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을 세상에 활짝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님이 주신 탈렌트라고 생각한다.


다윗이 살기 등등한 사울왕을 피해 광야에서 살아야 했던 시기가 있다. 그런데 몰래 찾아와 그의 힘이 되어준 사람은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었다. 요나탄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표지로 자신의 겉옷과 무기를 다윗에게 주었다. 요나탄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지만 전투에서는 용맹스런 전사로 많은 공을 세웠고 생의 마지막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장군이다.


요나탄이 사울의 아들로 왕위를 이어받는 것을 당시에 반대할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나 요나탄은 일찍부터 다윗의 인품에 마음이 끌려 다윗과 의형제를 맺고 평생 의리를 지켰다. 사울이 다윗을 질투하여 처단하겠다는 속내를 전한 것도 바로 요나탄이었다. 그리고 사울에게 충성한 죄밖에 없는 다윗을 왜 죽이려 하느냐며 직언을 한 것도 요나탄이었다. 요나탄은 다윗에게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요나탄의 다윗에 대한 우정과 사랑은 아주 각별하다.


요나탄은 자신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는데도 다윗의 큰 능력을 보고 왕위마저 양보한 도량이 넓은 인물이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사실 요나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고 이스라엘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권력의 탐닉은 부자간에도 양보가 없는데 요나탄은 개인보다는 국가, 우정을 지킬 줄 아는 인물이었다. 권력 앞에서는 양보나 의리와 정의도 메마른 요즘 요나탄과 같은 인물이 더욱 그리워진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가톨릭신문 2024-10-23 오전 9:32:1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