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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존의 가치 배운 한·미·일 청년들, 기도로 하나되다 2024-10-23
‘2024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에 참여한 한·미·일 청년들이 19일 서울 하자센터에서 현장답사한 내용과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2024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이 16~20일 경기 파주 민족화해센터와 서울 하자센터 등지에서 개최됐다. 이번 포럼에는 학생부터 박사·교수·활동가 등 여러 분야에서 평화를 위해 고민하는 한·미·일 청년 40여 명이 모였다. 주제는 ‘평화의 경로들’. 공동 기획한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는 “‘평화의 경로들’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며 “각자 자리에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으로 함께 평화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한반도에 서린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각자 평화를 향한 미래를 그려갔다.



동북아시아 평화 게임

참가자들은 17일 민족화해센터에서 6개 조로 나뉘어 동북아시아의 ‘여성·평화·안보’를 주제로 한국·북한·미국·일본·중국·NGO(WPA, 평화로운 아시아를 위한 여성)를 대변하는 토론을 펼쳤다. 출신 나라와 관계없이, 자신이 속한 나라의 목소리를 내는 역할 바꾸기 토론으로 일명 ‘동북아시아 평화 게임’이다.

배경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00년 10월 31일 채택한 결의안 1325호 ‘여성·평화·안보’(WPS)에 뒀다. ‘UNSCR 1325’라는 이 문헌은 ‘참여·보호·예방·구호 및 복구’의 네 가지 원칙으로 구성돼 있다. 유엔여성기구는 2030년 ''UNSCR 1325'' 채택 30주년을 맞아 네 가지 축을 달성하기 위한 지역협력방법을 논의하는 포럼을 개최하기로 했다.

이날은 가상 토론이었지만,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4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위안부 문제와 대북제재·내정간섭 등 민감한 국제 외교 상황에 관한 발언도 청년의 시각에서 거침없이 쏟아냈다.

한국과 중국·북한에 속한 참가자들은 일본에 속한 참가자들에게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 북한에 속한 미국인 참가자는 “무역 규제를 풀어 달라. 한·미·일 군사훈련을 줄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불리하면 거부권도 행사했다. 일본 참가자 시게마사 유씨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기도 했고, 협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대화 방법도 배우는 자리가 됐다”며 “평화를 위해선 더 세밀하고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밝혔다.

 
한·미·일 청년들이 현장답사로 방문한 철원 월정역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미국 청년들이 현장답사로 방문한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자료를 훑어보고 있다.
 
미국 참가자 케니씨에게 영국 뉴몰든 한글학교 이향규 교장이 땅굴 현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현장 탐방, 평화의 경로들

이번 포럼에서는 전쟁과 폭력, 생태계 파괴가 얼룩진 현장 여섯 군데를 조별로 탐방하고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참가자들은 18일 대전·삼척·교동도·철원·소성리·군산으로 흩어져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평화의 경로를 모색한 후 19일 하자센터에서 ‘필드워크 공유회’를 개최했다.

‘기억과 화해의 순례’를 주제로 떠난 대전에서는 독립운동가 240여 명이 옥고를 치른 대전형무소 터와 형무소에 수감된 민간인의 대대적 학살이 이뤄진 산내 골령골 등을 방문했다. 대전을 방문한 참가자들은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진정한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성찰했다”고 전했다. 미국 참가자 크리스티나씨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학살당한 후 3달 뒤 태어난 분이 지금도 살아계신다”며 “이 장소가 대단히 현재적이라고 느꼈다. 희생자와 후손을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또 방문해 기도를 바치겠다”고 밝혔다.

삼척을 찾은 참가자들은 ‘탈핵 탈석탄 운동 현장’을 마주했다. 핵발전소백지화기념탑과 맹방 항만공사장 등지에서 생태계가 무너지는 현장을 바라보며 생명의 가치를 되새겼다. 일본 참가자 토케시씨는 “삼척은 오키나와와 닮았다. 후텐마 기지를 다른 장소로 이전하면서 바다를 매립했고, 그때 많은 해양 생물이 사라졌다”며 “일본을 방문해 망가진 땅을 생명의 땅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 삼척에서 다시 상기됐다”고 말했다.

‘중립 평화의 섬’ 교동도로 향한 참가자들은 북방유적지를 답사하고, 70년 전 황해도 연백시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대룡시장을 찾았다. 교동도는 휴전하기직전까지 황해도 연백군과 경기도 강화군(현 인천 강화)을 연결해 주던 마을이었다. 전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연백군민들이 교동도에 정착해 원주민들과 함께 땅을 경작하고 양질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 지상의 DMZ나 해양의 NLL 같이 군사적 충돌을 할 수 없는 곳으로 평화의 섬이라 불린다. 박병주(미카엘)씨는 “어딜 가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었는데, 대룡시장에는 이념을 넘어 오직 사람만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과거의 참혹함을 기억하면서도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웠다”고 전했다.

‘DMZ 평화순례’라는 이름으로 철원을 찾은 참가자들은 국경선평화학교와 제2땅굴·평화전망대·북한 원산까지 이어지는 월정리역을 방문했다.

이수현(클라라)씨는 “제2땅굴은 1975년에 발견됐다고 하는데, 이는 1972년 7·4 남북선언 이후에 나온 것”이라며 “표면적으로는 화합을 말하면서 밑으로는 땅굴을 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며 분단의 아픈 현실과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 느꼈다”고 밝혔다.

일본 참가자 시요리씨는 “평화전망대에 올랐을 때 비가 강하게 퍼부었다”며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서로 싸우지도 못하겠다는 안도와 함께, 공존하는 미래를 그려보라는 하느님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미군 사드(THAAD) 미사일 배치 지역인 소성리로 향한 참가자들은 사드 배치가 확장되는 가운데 공사 차량이 거쳐 가는 주요 길목인 진밭교와 사드기지 앞을 방문해 평화와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을 목도했다.

군산을 찾은 참가자들은 미군기지 역사와 평화운동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는 군산평화박물관과 미군기지로 인해 강제이주를 겪은 하제마을,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청정자연이 훼손되고 있는 수라갯벌 등을 방문해 ‘생명과 평화’에 대해 성찰했다.

미국 참가자 케니씨는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아시아와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대개 미국인들은 한반도 이슈를 정책적으로 보지만, 젊은이들은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도 한국의 역사 현장들을 경험시켜주고 싶고,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기헌 주교가 한·미·일 참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기도에 함께하자고 격려하고 있다.



기도로의 초대

포럼에서는 영국 뉴몰든 한글학교 이향규(테오도라) 교장의 나눔 시간도 마련됐다.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뉴몰든은 코리아타운이지만, 2만여 명의 남한 사람과 한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난민으로 이주한 1000여 명의 탈북민들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2009년부터는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더 이상 늘지 않지만, 후손들이 공존해야 하는 곳이다. 이념 갈등이 여전한 불안한 공존이다. 학부모회장도 북향민이다. 그런 상황에서 함께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이 교장은 정치적 이념을 넘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교육 등을 설명하며 갈등 속에 이어지고 있는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전했다.

아울러 서한나(요안나) 감독이 제작한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여는 가톨릭 신자들’ 주제 영상도 상영됐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가톨릭 신자로서 기초부터 충실히 해보자는 취지의 영상이다. 서 감독이 말하는 기초는 ‘기도 초대’의 줄임말이다. 누군가의 초대로 이 자리에 온 것처럼 주변에 확장시키자는 제안이다.

포럼에 함께한 이기헌 주교는 “이번 포럼의 결론은 기도 초대인 것 같다”며 “평화의 가장 큰 조건은 연대에 있고, 연대하면서 기도 속에 살아가는 한·미·일 청년 여러분이 있기에 암울한 정세 속에서도 큰 희망을 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도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10-23 오전 7:52: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