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숲 속 모든 자연물은 놀잇감…“자연과 친구가 되었어요” | 2024-10-22 |
---|---|
아이들(피조물)끼리 서로 사랑하는 모습만큼 부모님(하느님)의 마음을 뿌듯함으로 적셔 놓는 광경이 있을까. 인간을 넘어 인간이 아닌 것까지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아이들의 올된 영육은 어쩌면 깊은 생태 감수성에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유·청소년 생태 감수성 함양 위해 자연물 활용 놀이 비롯 생태 교육 ■ 생명의 신비를 품은 한가을 속으로 찬 이슬이 내리는 절기 한로(寒露)를 어느새 2주 가까이 지나 보낸 10월 20일. 아침 최저 기온 8℃에 이르는 추위에도 탐사단원 22명이 청량산 입구에 모여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는 날씨와 사이좋게 발맞춰 무르익어 가는 단풍 속으로 단원들은 발길을 옮겼다. 수확을 앞둔 곡식과 닮은 금빛으로 일렁이는 햇살이 산길 곳곳의 나무, 덤불, 연못, 풀꽃의 무리를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파르르 날갯짓하는 곤충도, 인기척에 사부작사부작 숨는 작은 동물도,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식물도, 한복판을 걸어가는 사람의 무리도, 이 모든 걸 생동하게 한 햇살은 마치 부모님처럼 모두를 골고루 덥히고 있었다. “선생님, 단풍은 왜 드는 거예요?” 노란색, 빨간색, 곧 짙은 갈색까지 바싹 말라 떨어진 낙엽을 그러모으던 7살 꼬마 단원이 물었다. 환경연대 교육실 교사가 답했다. “나무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이란다. 우리 사람들은 참 행복하지? 봄에 봤던 꽃의 모습을 나뭇잎으로 또 볼 수 있잖아.” 도심 한복판의 자연에서 마주한 단풍은 말로 할 수 없는 온갖 천연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탐사단은 오늘 그것을 보고 즐기기 위해 청량산에 왔다. 단풍이 들고 곡식과 열매가 맺히는 한가을이야말로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오늘 마주친 신비한 생명들을 모아 나만의 꽃바구니를 꾸며 볼까요~?” 산길 곳곳에는 백합나무와 플라타너스의 큼직한 낙엽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교육실 교사들은 “낙엽으로 바구니를 만들어 산을 거닐며 찾은 나만의 꽃과 열매, 이파리, 씨앗 모음을 만들어 보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초등학생 단원들 고사리손보다 위아래로 한 뼘씩은 큰 나뭇잎을 고이 접었더니, 천연을 담는 천연 꽃바구니 완성이다. ■ “생명이란 건 참으로 신비해” 청량산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이었다. 열매에도 갈고리 같은 두꺼운 털이 난 도꼬마리, 익으면 콩깍지가 살포시 비틀어지다가 ‘와르르’ 콩알들을 퍼뜨려 내보내는 돌콩, 빨간 그 빛깔만큼 새콤달콤한 산수유 열매…. 한가을 청량산에는 이 모든 것이 한철이었다. “우와~ ‘탕후루’(糖葫芦) 나무다!” 단원들이 너도나도 계수나무 이파리를 꽃바구니에 담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하교 후 사 먹는 탕후루와 똑같은 냄새가 난다”며 키득거렸다. 과연 이파리에서는 설탕과 물엿을 녹인 듯한 달콤한 향이 났다. 계수나무 잎은 노랗게 물들어 떨어질 때, 잎에 남아있던 당분이 휘발해 날아가며 단내를 내뿜는다. 이는 자신을 방어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해발 172m 정도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중턱에 이르자 다른 나무들이 보였다. 단풍나무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빛으로 물들어 이름이 붙은 붉나무 군락으로 탐사단은 향했다. 전라도에서는 ‘불타는 것처럼 붉다’는 뜻에서 ‘불나무’라고도 부른다. 붉나무에는 후추알 같은 희끄무레한 작은 열매들이 송골송골 열려 있었다. “열매를 먹어 볼까요?”하는 교사의 제안에 아이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손을 뻗었다. “시고 짭짜름해요!” 붉나무 열매에는 사과산나트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과산나트륨은 과실산의 일종으로 젓갈을 담글 때 소금을 일부 대체해 염분 섭취를 줄여주기도 한다. 옛날 소금이 부족했던 강원도 산간에서는 붉나무 열매를 간수 대신 써서 두부를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리기만 했던 신비로운 것들이, 그것도 도심 한복판의 작은 산에도 가득하다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민들레’ 단원 안우진(베드로·초6) 군은 “백두산 같은 큰 산이 아니어도 산속에는 상상했던 것들이 잔뜩 있었다”며 “제각기 신기한 개성을 띤 동식물 친구들이 저마다 색다른 우리 반 친구들처럼 사랑스럽게 다가온다”며 웃었다. ■ 순환의 신비 산에는 보기 좋은 것들 일색인 것만은 아니었다. 단원들은 썩은 나무와 그루터기 무리도 마주쳤다. 하얀 곰팡이, 버섯이 잔뜩 피어 있었다. “곰팡이는 더러우니까 쓸모없는 애들이에요?” “자연 속에서 쓸모없는 존재는 없단다. 그건 우리가 함께 살기 때문이야.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쓰임 받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교육실 이선혜 교사(체칠리아·활동명 ‘무지개 물고기’)가 “버섯과 곰팡이는 숲속의 청소부와 같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썩고 죽은 나무 위에 자라는 버섯과 곰팡이는 긴 세월 잔해를 분해해 흙으로 돌려보낸다. 그 흙은 다시 새로운 동식물을 태동시키는 이부자리가 된다. “자연에는 ‘순환의 신비’가 있거든.” 순환의 신비는 생태환경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공생하기에 가능해진다. 불필요해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할 수 있다. 이렇듯 “낙엽도 땅에 떨어져 쓸모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이 교사가 말을 이었다. 애벌레들의 이불이 되고, 겨울에도 날아다니는 네발나비 등 곤충들의 먹이도 된다. 산언저리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들어 보이며 이 교사가 말을 이었다. “청설모가 땅속에 묻어놓고 그만 깜빡해 버린 도토리들도 그저 ‘버려진 음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다. 싹이 터서 참나무로 자라나면 숲의 일부가 되고, 청설모들이 먹을 더 많은 도토리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단 하나도 빚어놓지 않으신 창조주의 사랑 어린 숨결…. 무채색의 일상을 떠나 산과 숲에서 그 숨결을 한껏 들이쉬고 내쉰 단원들도 순환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사람이 혼자 잘사는 게 아니라 피조물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눈떴다. ‘푸르니’ 단원 최지웅(안티모·고1)·최리안(리타·중1) 남매는 “이 생명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또 생명으로서 사랑받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찾았다”고 고백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
|
[가톨릭신문 2024-10-22 오후 6:12:15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