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저를 보내주십시오] 프란치스코회 유의배 신부(하) | 2024-10-22 |
---|---|
한센인들과 오랜 세월 함께한 유의배 신부. 최근엔 언론과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도 이름이 알려졌다. 대중이 보기에 유 신부는 이제 할아버지 같은 든든한 존재다. 하지만 그도 한국에 온 초창기엔 낯선 땅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적응해 나가던 젊은이였다. 한센인들의 동반자 유의배 신부의 한국 적응기는 어땠을까. 또 유 신부의 타지 생활 원동력이었던 신앙은 어떤 모습일지 알아보자. 유의배 신부의 한국어 정복기 “한국이라는 나라의 분위기를 익혀 가면서 느낀 건 말 그대로 ‘한국 좋구나’였어요. 분위기도 좋고 한국 사람들도 좋고…. 그냥 마음에 들었어요.” 1976년 유의배 신부가 한국에 도착한 날은 공교롭게도 설날이었다. 덕분에 서울 정동에서 덕수궁 가는 길에 한복을 차려입은 많은 인파를 구경했다. 가족이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광경이 한국인에 대한 첫인상이었는데 그 모습이 예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좋아졌다. 한국어는 명도원(明道院)에서 배웠다. 명도원은 당시 한국에 선교사로 온 외국인 성직자·수도자들을 위한 ‘한국어 학교’로 1964년 문을 열었다. “수녀님들부터 시작해서 개신교 목사님까지 다양한 분들이 명도원에서 함께 공부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10명이었는데 졸업은 2명만 했지요.” 유 신부는 “난 명도원 2년 과정을 모두 마쳤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는다고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다”며 웃었다. 하지만 한국어 ‘실전 훈련’은 따로 있었다. 서울의 한 신부님이 유 신부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한국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리곤 유 신부에게 대전 갈마동에 작은 형제회가 운영하는 성심원 보육시설을 추천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아이들과 부대끼며 한국어가 좀 더 익숙해졌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거죠. 제가 말하다 틀리면 망설이지 않고 ‘한국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교정해주는 겁니다. 어른들은 부끄러워해서 제가 뭔가를 틀려도 말을 잘 안 해주거든요.” 짧은 기간임에도 유 신부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즐겁게 기억했다. 그 뒤로 산청 성심원에 오기 전까지 진주, 제주도 등을 돌며 다양한 한국 문화를 맛봤다. 프란치스코회 입회 후 서서히 깨달은 선교 사명 한국에 들어온 지 4년, 한국 문화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1980년 산청 성심원에 자리 잡아 지금까지 왔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부터 낯선 땅에서 언어를 익히고 한센인들의 안식처로 가기까지. 유 신부는 시종일관 즐겁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지만 타지에서의 삶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 신부가 행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린 시절부터 성령에 이끄심에 몸을 맡긴 덕분이었다. 고향인 스페인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의 동네 성당에 가족을 따라 매주 나갔다. 성당은 집에서 겨우 5분 거리에 있었다. 삼촌이 프란치스코회 신부이기도 해 수도회 신부님들을 자주 접했다. 유 신부는 “신부님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분인지 잘 몰랐고, 처음엔 주변 말만 듣고 막연하게 신부님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릴 적 프란치스코회 신부님들은 돈이 없어도 바닷가까지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프란치스코회 신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삼촌 신부님을 따라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다. 그때만 해도 사제 성소에 대해, 수도회 사명에 대해 전혀 몰랐다. 수도회의 각종 모임에 나가며 조금씩 프란치스코회의 선교 사명을 마음에 새겼다. 선배 선교사들에게 아시아의 여러 국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린시절 라디오와 아버지에게서도 들었던 한국이었다. 유의배 신부가 전하는 신앙 프란치스코 성인도 한센인들과의 만남 이후 완전히 새사람이 됐다. 유 신부에게 프란치스칸으로서의 삶을 물었다. 유 신부는 “프란치스코가 나병환자를 피하려고 하다가 그들을 안아주고 삶이 바뀐 것처럼, 예수님 같은 마음을 갖고 복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고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자신이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령을 보내 달라고 청해야 한다”고도 했다. “천국이라는 좁은 길로 가기 위해선 정말 어린이처럼 돼야 합니다. 어린이처럼 놀고, 마음이 가난하고 부드러워야 하며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프란치스코 성인이 보여주신 길이 바로 이거예요.”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이 유 신부도 편견 없이 한센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44년간 한센인들과 더불어 산 비결이었다. 성심원에서 만난 유 신부는 그렇게 프란치스코 성인을 쏙 빼닮아 있었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 |
|
[가톨릭신문 2024-10-22 오후 6:12:15 일 발행 ] |